시로 여는 일상 1052

안도현 겨울밤 시 쓰기

겨울밤에 시 쓰기/ 안도현 연탄불 갈아 보았는가 겨울 밤 세 시나 네시 무렵에 일어나기는 죽어도 싫고, 그렇다고 안 일어 날 수도 없을 때 때를 놓쳤다가는 라면 하나도 끓여 먹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는 벌떡 일어나 육십촉 백열전구를 켜고 눈 부비며 드르륵, 부억으로 난 미닫이문을 열어 보았는가 처마 밑으로 흰 눈이 계층상승욕구처럼 쌓이던 밤 나는 그 밤에 대해 지금부터 쓰려고 한다 연탄을 갈아본 사람이 존재의 밑바닥은 안다, 이렇게 썼다가는 지우고 연탄집게 한번 잡아보지 않고 삶을 안다고 하지마라, 이렇게 썼다가는 다시 지우고 볼펜을 놓고 세상을 내다본다, 세상은 폭설 속에서 숨을 헐떡이다가 금방 멈춰 선 증기기관차 같다 희망을 노래하는 일이 왜 이렇게 힘이드는가를 생각하는 동안 내가 사는 아파트 공단..

2019. 경향, 조선 신춘 당선 시

2019. 경향, 조선 신춘 당선 시 경향신문 너무 작은 숫자/ 성다영 도로에 커다란 돌 하나가 있다 이 풍경은 낯설다 도로에 돌 무더기가 있다 이 풍경은 이해된다 그린벨트로 묶인 산속을 걷는다 끝으로 도달하며 계속해서 갈라지는 나뭇가지 모든 것에는 규칙이 있다 예외가 있다면 더 많은 표본이 필요할 뿐이다 그렇게 말하고 공학자가 계산기를 두드 린다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지만 그렇기에 더 중요합니다 너무 작은 숫자에 더 작은 숫자를 더한다 사라져가는 모든 것은 비유다 망할 것이다 한여름 껴안고 걸어가는 연인을 본다 정말 사랑하나봐 네가 말했고 나는 그들이 불행해 보인다는 말 대신 정말 덥겠다 이제 그만 더웠으면 좋겠어 여기까지 말하면 너는 웃지 그런 예측은 쉽다 다영씨가 웃는다 역사는 뇌사상태에 빠진 몸과..

윤은성 공원의 전개

공원의 전개/윤은성 영원이라는 말을 쓴다 겨울의 도끼라는 말처럼 우연히 여기라고 쓴다. 공원이라고 쓴다. 누군가를 지나친 기분이 들었으므로 모자를 벗어 두고 기타를 치고 있는가 물구나무를 서고 있는 아이의 다리 위로 그대는 날아가려 하는가 발을 버둥거릴때 옷깃을 쥐려하는 손들이 생기고 손목을 내리 찍으려고 돌아다니는 도끼 물이 어는 속도로 얼음이 갈라지는 속도로 겨울의 공원이 생기지, 해가 저물도록 벤치에 앉아서 책을 읽던 사나이여 그대의 곁에서 넘어지고 일어서는 어린 수리공들 우리는 우리의 작업을 언제든 완료할 수 있지, 그저 꽃잎을 떨구면 그저 붉은 페인트 통을 엎지르면 상점은 짜부라지면서 물건을 토해내지, 상점의 주인처럼 주인의 집주인처럼 이빨들이 썩어가지, 그림자에서는 머리카락이 점점 길어지고 그..

내 소원은 죽은 토끼/박상순

내 소원은 죽은 토끼/박상순 내 소원은 죽은 토끼, 죽은 토끼는 녹슨 총, 녹슨 총은 편지 지, 편지지는 꽃무늬, 꽃무늬는 손톱, 손톱은 두번 째 죽은 토 끼. 두번째 죽은 토기는 두번째 녹슨 탱크, 녹슨탱크는 나비, 누군가의 가슴에 앉은 두마리 나비, 나비는 가로등, 가로등은 눈 덮인 산, 산은 술잔 속에 빠진 별, 별은 주유소, 주유소는 나 의 고독, 고독은 네가 준 보석, 보석은 수없이 부서지는 나, 나 는 끝없이 불어나는 너, 너는 내 소원, 내 소원은 죽은 토끼 * * * 원숭이 엉덩이 빨개, 빨간 것은 사과, 사과는 둥글다...로 이어지던 언어의 유희성, 은유의 유희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시 하필이면 죽은 토끼? 죽은 토끼가 녹슨 총이고 녹슨탱크라니 내 소원은 죽은 토끼가 되겠다만 현실에서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