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1052

이윤학 이미지

이미지/이윤학 삽날에 목이 찍히자 뱀은 떨어진 머리통을 금방 버린다 피가 떨어지는 호스가 방향도 없이 내둘러진다 고통을 잠글 수도꼭지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뱀은 쏜살같이 어딘가로 떠난다 가야한다 가야한다 잊으러 가야한다 * * * 시 공부 할때 ' 객관적 상관물'의 예시로 자주 인용되는 시입니다. 물을 틀고나면 물흐름 따라 구불거리는 호스의 꿈틀거림, 꼬여서 막힌데가 있으면 터져서 폭발하기도 하는 자주 보는 광경인데도... ' 삽날에 목 찍힌 뱀이라네요' 여러 시인들의 감상이 있는데 우리샘(유홍준)과 이영광 시인과 두분 감상만 곁들여 봅니다. 이전에도 여러차례 언급하셨지만 지난 화요일 시 합평회에서 이 시 재차 소개하시면서 이윤학 시집 읽어보라 과제 내셨거든요. 제목 그대로 이미지가 선명합니다 수압이..

조민 고양이의 시간

고양이의 시간 / 조민 잠이들면 한 뼘씩 길어지는 발이 있다 발톱의 흰 반달이 자라서 보름달이 되는 발이 있다 발꿈치가 자꾸만 껌처럼 달라붙는 발이 있다 노란 복숭아 닮은 발이 있다 길어지고 또 길어져서 흰 거품을 문 해안선이 되고 파도가 되고 계단이 되어 누군가의 등짝을 밟고 점점 둥글어지는 무덤 꿈 속에서만 걷는 발이 있다 자라지 않는 아이의 눈 속에서 신발이 되고 의자가 되고 유리컵이 되고 담배 연기가 되는 발이 있다 잠이들면 두뼘 세뼘 길어지는 발이 있다 * * * 주변에서 가장 만나기 쉬운 동물, 개와 고양이입니다. 여성 화가들이 쉽게 그리는 대상이 꽃, 과일 같은 정물이듯이 여성 시인들은 고양이를 대상으로 시를 많이 써요. 황인숙 시인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데 시의 대상으로 삼을 뿐 아니라 실제..

박세랑 프랑케슈타인의 인기는 날마다 치솟고 너희는 약 맛을 좀 아니?

박세랑 프랑케슈타인의 인기는 날마다 치솟고 너희는 약 맛을 좀 아니? 나사들이 머릿속을 맴돌고 있어 불안이 피부 위로 돋아났어 그림자를 주워 입고 노을을 구경하는데 나는 왜 멀쩡한 걸까? 무서운 말도 장난처럼 찍찍 내뱉을 줄 아는데 의사는 맨날 망가질 거래 조롱하는 입술처럼 젖꼭지가 점점 더 삐뚤어질 거며 나에 관한 어떤 얘기도 꺼내지 않는다면 뒤집힌 물고기처 럼 밤낮으로 불안에 시달리 거래 혀를 쑥 내밀고 가로수에 매달려 지나가는 사람이나 깜짝 놀래키고 싶은데! 날개를 쫙 펼치 고 찢어진 흉터처럼 날아다녀야지 시퍼런 가위처럼 살아있는 것들은 전부 오려내야지 목말 라서 헐떡이는 사람을 목매고 싶게 만들어야지 켜 놓은 가스불처럼 온 집안을 잿더미로 뒤덮 어야지 앞만보고 똑 바로 걸어가도 비뚤어지고 버텨야 ..

박세랑 뚱한 펭귄처럼 걸어가다 장대비 맞았어

뚱한 펭귄처럼 걸어가다 장대비 맞았어/박세랑 난 웃는 입이 없으니까 조용히 흘러 내리지 사람들이 웅덩이를 밟고 지나가 더 아프려고 밥도 꼬박 꼬박 먹고 알약도 먹어 물처럼 얼었다 녹았다 반복되는 하루 친구라도 만들어야 할까? 우동 먹다 고민을 하네 무서운 별명이라도 빨리 생겼으면 좋겠다 약 먹고 졸린 의자처럼 찌그덕삐그덕 걷고 있는데 사람들은 화가 나면 의자부터 집어던지네 난 뾰족하게 웃는 모서리가 돼야지 살아 본 적 없는 내 미래를 누가 부러뜨렸니! 약국 가서 망가진 얼굴이나 치장해야지 뒤뚱뛰뚱 못 걸어야지 난 은밀한 데가 조금씩 커지고 있어 몸은 축축해 곰팡이가 넘치는 벽이 되려고 해 사람들이 깨트리기도 전에 계란프라이처럼 하루가 누렇게 흘러내리고 탱탱하게 익어가는 구름들아 안녕 누가 좀 만져주면 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