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여행/베트남 13

바나 힐 3. 선월드 골든 브릿지

바나 힐 3. 선월드 골든 브릿지 3년만이던가요? 하롱베이와 호치만 다녀온 게 올 여름 다낭 다녀오고 나서 베트남이 급속히 선진화되어 간다고 느겼습니다. 그러나 화려하게 발전해 보이는 이면에는 또 반드시 어두운 면이 있는게 세상이치라서 근래 영국에서 밀입국 하려다 냉동차에서 모두 숨진 채 발견된 젊은이들... 베트남 국적이었습니다 경악이고 충격이었지요 보다 나은 삶을 꿈꾸며 막대한 비용을 들여 떠났을텐데요. 도착하기도 전에 주검이 되었으니... 바나힐도 원래 프랑스식민 지배시 기득권들의 별장이었다고 앞에서 얘기했지만 화려한 별천지 같았는데요. 반면 소액의 일당을 받으며 일하는 노동자나 관광객들을 노리는 소매치기들은 그 화려한 발전의 이면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국민이겠지요. 좀 단순하면 좋은데...모든 걸 ..

다낭 호이안 바나 힐 2.

다낭 호이안 바나 힐 2. 케이블카를 환승해서 타고 올라 간 바나 힐 1600M 고지, 식민지배 시기 총독이든지 기업가든지 누린자의 별장으로 만들어졌던 곳 더운 지방에서 시원하게 보낼 수 있을 뿐더러 도시전체 모습을 조망하고 건너 해안까지 다 내려다 보이는 전망이 별천지인 곳 처음 세워졌던 별장을 중심으로 놀이 공원이 만들어져 있어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었는데 대부분은 길게 늘어서는 줄에서 차례를 기다려 반나절 구경하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그 곳에서 숙박을 하고 나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서양인, 동양인을 가리지 않고 캐리어를 끌고 나오는 사람들 노년층, 아이들이 끼인 가족단위 여행객이었다 휴가와서 장기숙박하는 사람도 있을까? 하긴 요즘은 호텔 피서도 있다잖은가 조건 좋은 곳에서 먹고자고, 밥..

호이안 바나 힐 1.

호이안 바나 힐 1. 여행은 그 나라 사람들의 역사와 문화, 음식과 생활양식에 관한 통합적 체험입니다. 그리고 그 체험은 시공간을 두고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20-30년 전 베트남 사진을 보면 아오자이 입은 모습, 도로를 달리는 자전거 부대 호이안, 후에는 정통과 역사를 읽을 수 있는 문화유적이 많았고요 바나 힐은 역사적 장소에 과학기술이 이루어낸 문명의 또 한 부분을 보여 준다고 할까요 다낭이 더워서 식민시기 프랑스 인들이 1600M 되는 산정에 별장을 지어 시원하게 지냈던 곳 세계에서 두번째였다는데 이제는 네번째라나 30분 이상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갑니다 온 세계 사람들이 다 모여드는터라 케이블카 타는 곳, 또 루지 타는 곳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어 아침 일찍 출발했습니다 입구 입장하는 곳입니다...

후에 카이딘 왕릉, 티엔무 사원

후에 카이딘 황제릉, 티엔무 사원 민망(2대) 왕릉에서부터 내리기 시작한 열대 스콜 카이딘 황제릉(12대)에 도착했을 때 절정에 달해서...사진은 언감..눈에 담기도 바빴습니다 민망황제릉이 전통적인 차분함과 중국 인접한 분위기의 역사를 반영한 분위기였다면 카이딘 황제릉은 외양적인 분위기로 보면 앙코르왓 같은 느낌, 물론 앙코르왓은 흙이 비에 젖었다 녹았다 천년동안 굳어져 풍기는 모습이고 카이딘왕릉은 아직 백년이 안됐으니 건축자재에 열대기후가 만들어 낸 분위기라 해야할지... 그러나 자세히 보면 용이 새겨진 난간 같은 조각들은 당시 프랑스 영향을 받은 부분이 있으며 특히 건물 내부는천장이나 벽면이 유리나 도자기 모자이크로 만들어 져서 매우 화려하고 사치스런 분위기의 왕릉입니다 보통 무덤은 자식들이 부모님들..

베트남 후에 민망 왕릉 모습

베트남 후에(HUE) 민망 왕릉 베트남 마지막 왕조는 응우옌 (1802-1945) 입니다. 그 왕조의 오랜 수도가 후에였는데요. 다낭에서 버스로 2시간 반 정도가 떨어져 있습니다 왕능 총 7개가 대부분 흐엉강변에 밀집해 있다는군요 그 중 2대 민망황제(1791-1841 재위1820-1840), 4대 뜨득황제(1848-1883), 12대 카이딘 황제(1916-1925) 능 중 한 두군데를 보게 되는데 우리는 민망황제와 카이딘 왕릉을 봤습니다 아시아권 전체가 알게 모르게, 크든 작든 중국영향을 받았지요. 베트남 역시 그러합니다 중국 문화적 영향과 열대적 자연환경, 인접한 태국영향, 사상적으로는 불교 유교 영향도 있겠지요. 그러다가 근대 선교사 박해로 프랑스 침입을 받았고, 2차세계대전 때 인도차이나 반도로 ..

비엣남 호이안 풍경

호이안 풍경 다낭에서 30-40분 거리에 있는 호이안의 올드타운, 근대국가 시기 호이안에는 중국, 일본및 동남아각지의 상인들이 몰려들었습니다 16-17세기 일본인 상인들이 정착하여 거주지를 만들었는데 당시 일본상인의 수가 수천명이었다 합니다. 1637년 에도막부가 쇄국을 선언한 이후 상권은 쇠퇴하기 시작하였다는데 일본인들이 세웠다는 ' 내원교'라는 다리를 중심으로 중국인 거리와의 경계가 되고 있답니다 17세기부터는 중국인들이 상권을 장악하기 시작했답니다 ' 호이안에는 각국 상품들이 모이는 큰 항구가 있다. 강을 따라 이어지는 길에 3,4 개의 마을들이 이어져 있다 이 길을 중국인 거리라고 하는데, 길 양측에 점포들이 빈틈없이 늘어서 있다. 주민들은 푸젠성(福建省) 출신들이다' 라는 기록이 전해진다고.....

베트남 다낭

베트남 다낭 오행산 2017년 1월 하노이에 이어 이번에는 중부 다낭을 다녀왔습니다 자연인이라 매일이 휴가인 상태에서 특별히 휴가랄 것도 없고 다음 학기 일을 하면 한 학기 꼼짝없이 매일 것 같아서 후다닥 다녀왔지요. 여러차례 함께 여행을 했던 대학동기 친구는 아직 현직입니다 보충수업까지 하는 빡빡한 방학이었지만 다음 학기 또 열심히 생활하기 위한 에너지를 얻기 위해 기분전환을 위해 한 바퀴 돌고오는 일에 의기투합 했달까요 원래는 몽고 같이 조금이라도 시원한 곳을 가고 싶었는데 계획대로 안 되는게 또 인생 여기나 거기나 덥긴 매 한가지여서 좀 걱정 했습니다만...잘 다녀 왔습니다 공항에서 박항서 사진이 크게 환영해 줬는데...사진은 못 찍었어요 짐 찾느라 외국인 가이드 취업은 불법이어서 현지인 가이드를 ..

베트남 다낭 풍경

베트남 다낭 풍경 오늘 아침에 읽은 정보에 의하면 이번 추석 명절휴가, 희망신청 1위가 다낭이라네요 어느 누구의 불행이 다른 누구의 행복이 될 수도 있는 게 인생이지만 베트남을 한국 관광객이 먹여 살린다는 말, 좀 과장은 됐겠지만 틀린 말도 아닌 듯해요. 가는 곳마다 한국인이 바글바글했으니... 우선 열대 베트남, 그 중부에 있는 휴양도시 다낭, 프랑스 중국, 일본 등 식민 잔재가 관광지가 되어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곳, 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풍경 사진 몇 올립니다 미케 비치 해안 세계 6대 해안에 들던데... 베트남 왼쪽은 중국 라오스 캄보디아와 국경을 접하지만 오른쪽은 온통 바다에 면해 길게 내려가니 해변이 죽 이어서 펼쳐지는 게 당연하고 북부냐 중부 남부냐 에 면했느냐에 따라 해변 수온도 달라지..

베트남 전통시장

베트남 전통시장 하노이에서 14:55분 출발해서 1시간 40분 정도 날라 16:35 씨엠립 공항에 도착할 계획이었는데 차질이 생겼습니다. 타야 할 비행기가 한국에서 못 왔다든가... 여행사 본사에서 결정권 있는 한 사람이 해결하려고 접촉하고 있다는 안내와 함께 전통시장 투어와 발 마사지 두 군데 관광을 추가하여 연장된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하노이 중심가에 있는 호안끼엠 호수 '되돌려 준 칼의 호수' 사연을 들으며 ' 엑스카리버'라는 영화를 떠 올렸습니다 명군의 침략을 물리 친 '레 타이 투'왕이 잃어 버린 검을 찾기 위해 작은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는데, 거대한 황금 거북이가 수면으로 올라와 검을 전해주고 갔다는 얘기가 전해지는 곳으로 이 호수에는 지금도 거대한 거북이들을 볼수 있는데 어떤 것들은..

베트남 하노이

하노이 바딘광장과 한기둥 사원 베트남 독립과 통일이라는 두가지 업적에서 호치민을 빼고 얘기할 수 없겠지요. 학창시절에는 호지명이라는 한자이름으로 공부한 기억이 납니다만 윌리엄 듀이커의 에 소개된 한 구절로 그 인격을 표현하고자 합니다. " 반은 레닌이고, 반은 간디다 " 평생을 프랑스, 일본, 미국 제국주의와 싸운 혁명가이자, 냉철한 전략가이면서 베트남인들에게는 ' 호 아저씨'로 불리던 검소하고 서민적인 민족지도자가 연상됩니다. (1890 ~1969) 이 광장에서 1945년 호치민이 독립선언을 낭독했고, 호치민의 묘소 또한 이곳에 있는데 미이라로 안치된 시신을 보기 위해 베트남 전역의 사람들이 모여든답니다. 시신을 볼 수 있는 요일이 정해져 있어 우리는 묘소 건물 안에는 들어가지 못했고 위병이 인형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