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2019년 신춘문예 당선시 세계일보, 대전일보

생게사부르 2019. 1. 3. 07:36

 

     ■ 2019. 신춘문예 당선시 


   

대전일보


그녀가 뛰기 시작했다/임호


출근길, 그녀가 뛰기 시작했다
은행알들이 비좁은 그녀의 구두에 밟혀 터진다

'' 헬로 에브리바디~ 근데 내가 좀 바쁘거든요~!"

우리의 그녀는 바쁘다
우리의 그녀는 뛰지 않을 수 없다
어깨에 당겨 맨 앙증맞은 가방엔
있어야 할 약간의 센스와

없어도 될 약간의 의심을 담고

우리의 그녀는 뛴다
한꺼번에 많이 벌릴 수 없어 조금씩 뛴다

그녀는 뛴다
누군가에게 잡히지 않을 만큼씩 뛴다
먹이를 쪼는 비둘기처럼 뒤뚱거리며 뛴다

늦지 않기 위해, 울지 않기 위해, 모자라지 않기 위해, 같아지기 위해?

그녀의 치마는 그녀가 선택할 수 없는 바람에 흩날리고
그녀의 가슴은 어딘가로 가고 있다는 안도로 출렁이고
그녀의 쇄골은 떡볶이처럼 흐느적거리고
그녀의 뺨은 뿌듯함으로 달아오른다

우리는 이런 그녀를 흐뭇하게 바라본다
우리는 그녀의 페이트런

그녀의 협잡꾼 그녀의 앞잡이

상처의 방향이 다를 뿐
우리는 한 이불에서 뛰기 시작했다
누가 그녀를 미워할 수 있겠는가
명랑한 그녀의 부주의를
누가 그녀를 모른 체 할 수 있겠는가
자꾸만 예뻐지는 그녀의 미래를
누가 그녀를 손가락질 할 수 있겠는가
그녀만의 달콤한 모멸을

그러므로 우리는 그녀의 피앙세
도려낸 시간에서 흐르는 육즙을 받아 마시며
저 푸른 초원위에 녹초기되어 쓰러질 때까지 달리다가

돌아와 그녀가 사라진 엘리베이터 앞에 앉아
포크를 움켜쥐고 그녀의 퇴근을 기다리는
우리는, 우리는 모두

그녀의 그녀


세계일보


역대 가장 작은 별이 발견되다/ 박신우


별이 깃든 방, 연구진들이 놀라운 발견을 했어요 그들은 지금까지 발견된 별 가운데 가장 크기가 작은별을

발견 했습니다 그 크기는 목성보다 작고 토성보다 약간 큰 정도로, 지구 열개 밖에 안들어가는 크기라더군

세상에 정말 작군요, 옥탑방에서 생각 했어요 이런 작고 조밀한 별이 있을 수 있다니 하고 말이죠 핵융합

반응 속도가 매우 낮아서 표면은 극히 어둡다고 합니다 이제야 그늘이 조금 이해되는군요

이 별의 천장은 매우 낮습니다 산소가 희박하죠 멀리서 보는 야경은 아름다울지 몰라요 어차피 낮에는 하늘

로 추락하겠지만 그래도 먼지가 이만큼이나 모이니 질량에 대해 얘기할 수 있군요 그건 괜찮은 발견이에요

먼 곳에서 별에 대해 말하면 안돼요 다 안다는 것처럼 중력을 연구하지는 말아야죠 피아노 두드리듯 논문을

쏟아내지는 말아요 차라리 눈물에 대해 써 보는게 어때요 별의 부피를 결정하는 요소는 여러 가지입니다,

요한 것은 둘레를 더듬는 일이죠 옥상 난간을 서성거리는 멀미처럼 말이에요

여기 옥탑에서는 중력이 약해서 몸의 상당부분이 기체로 존재해요 그래요 모든 별들은 항상 지상으로 언제

떨어질지 숨을 뻗고 있는 거죠


사진출처: 블로그 '그림이 좋은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