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온 것처럼 한 문장을 쓰다 / 김태경 내가 살아온 것처럼 한 문장을 쓰다/ 김태경 외로웠구나 그렇게 한마디 물어봐줬다면 물가에 앉아 있던 멧새 한마리 나뭇가지에 어떤 떨리는 영혼을 올려놓고 갔을 것이다 첫 문장을 받았을 것이다 사나운 눈발 속으로 발자국도 없이 검은 늑대가 달리는 계절이었을 것이다 아프냐고 물.. 시로 여는 일상 2019.09.09
라 쿠카라차/ 김 안 라 쿠카라차/ 김 안 당신은 실패한 혁명의 이름을 몇개나 알고 있나요? 혁명이 진압될 동안 멕시코에 눈이 내리고, 여행자의 마리화나는 떨어지고, 신문은 두꺼워지죠. 당신께 말은 안했지만, 실은 그날 밤 애인의 표정이 벌레가 되어 날아갔습니다. 손가락 데일 정도로 신문 속에서는 불.. 시로 여는 일상 2019.09.08
멧새가 앉았다 날아 간 나뭇가지 같이 장석남 멧새가 앉았다 날아 간 나뭇가지 같이/ 장석남 내 작은 열 예닐곱 고등학생 시절 처음으로 이제 막 첫꽃 피는 오이넝쿨만한 여학생에게 마음의 닷마지기 땅을 빼앗기어 허둥거리며 다닌 적이 있었다 어쩌다 말도 없이 그앨 만나면 내 안에 작대기로 버티어 놓은 허공이 바르르르르 떨리.. 시로 여는 일상 2019.09.06
정진규 옷(알 26) 옷 / 정진규 -알 26 옷 입고 오는 비를 나는 본 적이 없다 처음부터 젖어 있는 알몸이 기에 그는 따로 젖을 필요가 없다 갈아입을 필요가 없다 늘 옷을 입고 다니는 나는, 알몸일 수 없는 나는 젖는다 언제나 갈 아입는다 아직 들키지는 않았지만 젖은 마음의 옷들이 내게는 꽤 여 러 벌이다 .. 시로 여는 일상 2019.09.04
외출 최문자 외출/ 최문자 시인이 생선을 고른다 값을 물어 보기전에 깊은 바다에 얼마나 드나들었나? 아가미를 열어본다 바다에서 나와 땅에서 떠돌기를 얼마나 쓸쓸했나 지느러미 힘줄을 들쳐본다 정말 바다의 자식인지 등짝에서 파도에게 매맞은 푸른 멍자국을 찾아본다 얼마나 바다를 토해내야 .. 시로 여는 일상 2019.09.03
유종서 나비물 나비물/ 유종서 박수소리를 듣는다 그 수도가 박힌 마당은 수도꼭지를 틀 때마다 콸콸콸 물의 박수를 쳐준다 꾸지람을 듣고 온 날에도 그늘이 없는 박수 소리에 손을 담그고 저녁별을 바라는 일은 늡늡했다 그런 천연의 박수가 담긴 대얏물에 아버지가 세수를 하면 살비듬이 뜬 그 물에 .. 시로 여는 일상 2019.09.01
실명 최문자 실명/ 최문자 흠집이 많은 과일이 좋았다 열망할적마다 찌부러진 그 자리가 흉할수록 좋았다 한사코, 불구의 반점으로 남고 싶은 위험한 사상은 가을을 기다려 오히려 흉터가 되었다 흠집이 많은 과일일 수록 좋았다 용서할 수 없어 한없이 헛구역질 하던 그 자리가 좋았다 아플 것 다 아.. 시로 여는 일상 2019.08.30
구름을 빙자하여 강재남 구름을 빙자하여/ 강재남 비가 내린다 희극적으로 때로 냉소적으로 또는 그런 것 으로, 구름의 서식지는 허공이다 입술이다 마비된 혀끝이 다. 라고 쓴다 네 입술은 촉촉하고 너는 페루로 떠났다 구름의 근육이 만져진다 허공을 찢 으며 구름이 무너진다 살아서 일렁이는 것들, 이라고 쓴.. 시로 여는 일상 2019.08.29
얼룩말 감정/ 최문자 얼룩말 감정/ 최문자 재가 된 그를 북쪽으로 가는 거친 파도위에 뿌렸지만 그는 익사하지도 떠오르지도 않았다 죽음은 아무래도 내게 잘못 보내 주신 낯선 짐승 도심 어느 골목에 멍하게 서있는 얼룩말 한 마리 그가 없는 밤이 지나가면 밤이 왔다 우리만 모두 살아 있는 새벽 내다버린 .. 시로 여는 일상 2019.08.26
니나노 난실로/ 송진권 니나노 난실로/ 송진권 아니요 조금만 더 울다 갈게요 당신 먼저 가요 지금 나는 그때 내가 아니고 내 노래도 그 때 부르던 노래가 아니죠 나를 살지 못해 나는 내가 아니었어요 당신도 그리웠던 당신이 아니었어요 신발 벗어 물에 띄우고 그림자 벗어 꽃 핀 나무에 걸어두고 꽃 꺾어 채에.. 시로 여는 일상 2019.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