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종사 삽살개처럼/ 심언주 수종사 삽살개처럼/ 심언주 네발 수행이나 할걸, 운길산에서 송촌리를 오르내리며 바람 소리라도 들을걸, 눈 빠끔히 구름 빛 털을 장삼처럼 걸치고 비에 흠뻑 젖어 보고 장신구 삼아 도깨비바늘도 붙여보고 풀, 꽃, 냄새 몯혀 와 절 마당에 내려 놓아 볼걸, 꼬리로 툭, 툭, 바닥을 두드리며.. 시로 여는 일상 2019.07.27
벽제화원/ 박소란 벽제화원/ 박소란 죽어 가는 꽃 곁에 살아요 긴긴 낮 그늘 속에 못 박혀 어떤 혼자를 연습하듯이 아무도 예쁘다 말하지 못해요 최선을 다해 병들테니까 꽃은 사람을 묻은 사람처럼 사람을 묻고도 미처 울지 못한 사람처럼 쉼 없이 공중을 휘도는 나비 한마리 그 주린 입에 상한 씨앗 같은 모이나 던져주어요 죽은 자를 위하여 나는 살아요 나를 죽이고 또 시간을 죽여요 * * * 황병승 시인이 사망했습니다. 죽은지 보름이 넘어 발견 되었고요. 이제 49의 젊은 나이에... 고독사라니... 오늘 연극인 이윤택은 7년 형을 받았다는 기사도 봅니다 시인이나 예술인이기 전에 ' 민주사회의 한 시민으로' 인간 보편의 ' 인권 의식' ' 인격' 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하면서 그런 논란을 불러 온 개인에게 일차적 책임이 있.. 시로 여는 일상 2019.07.24
강재남 참꽃과 헛꽃에 대해 생각하는 참꽃과 헛꽃에 대해 생각하는/ 강재남 오후 두시에 내리는 비는 수직이다 머리를 곤두박질치듯 땅으로 들이미는 내밀한 직유다 직유는 자유라는 다른 이름의 시니피앙 부정문에 흡착 된 자유의 함몰 수직에 익숙한 우리가 언제 수평적인적 있었던가요, 묻고 싶은 날 쓰러지듯 창가에 기댔다 수평으로 물결치는 물 무늬 빗물이 기이한 수평으로 인식되던 날, 내가 마음대로 수평을 읽어버리던 날 산수국이 피었다 어제 산길에서 보았던 보랏빛 무더기 가난한 심장을 가진 헛꽃과 차가운 참꽃 이야기가 바위 틈에 숨어 있었지 시린 색깔을 그대로 안아버린 헛꽃과 무심한 참꽃이 빗 물을 받아내고 있었지 헛꽃을 닮은 당신과 이름만 참꽃인 나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다가 당신의 수평과 나의 수직의 흔들리는 것을 생각하다가 당신의 감싸기와 나의 .. 시로 여는 일상 2019.07.22
장마/ 성영희 장마/ 성영희 비 내리는 강가 청둥오리 한 마리 머리를 쳐 박고 연신 자맥질 중이다 뒤집힌 강물 속에서 무엇을 솎아낸 것일까 아름다운 지느러미와 꼬리를 삼키고 물갈퀴마다 꽃이 피는 지금은 산 허리도 부푸는 장마철 물이, 물의 것들이 날아 올라 풀숲에 든다 물이 쏟아지는 철인데 .. 시로 여는 일상 2019.07.20
여름궁전/ 성영희 여름궁전/ 성영희 폐허를 두들겨 빨면 저렇게 흰바람 펄럭이는 궁전이 된다. 매일 바람으로 축조되었다 저녁이면 무너지는 여름궁전은 물에 뿌리를 둔 가업만이 지을 수 있다 젖은 것들이 마르는 계단, 셔츠는 그늘을 입고 펄럭인다 몸을 씻으면 죄가 씻긴다는 갠지스강 기슭에서 두들겨.. 시로 여는 일상 2019.07.18
김혜순 나비-열 하루 나비 - 열 하루/ 김혜순 네가 이미 죽은 사람이란 걸 깨닫는 방법은 이와 같다 유리창에 대고 입김을 불어본다 가슴에 손을 얹어본다 탄생이란 항상 추락이고 죽음이란 항상 비상이라 하니 절벽에서 몸을 날려본다 매일 이어지는 지면紙面을 향한 추락인가? 비상인가? 한 쪽 발로 선 나비가 다른 쪽 발엔 빨간 잉크를 찍어 종이에 편지를 써 본다 엄마: 설마 너 태어나자 마자 웃는 거야? 너: 아니 웃을 수 있는가 보는 거야! 추락이 시작되면 비명의 비상도 시작한다 심연의 가장자리가 무한히 떠 오른다 하늘에서 푸른 물방울 하나 지펴질 때마다 네 날개가 물위에서 퍼지는 파문처럼 일시에 지펴지고 너는 이제 너에게서 해방인가! 네 발에는 곧 발자국이 없다 네 목소리에는 곧 소리가 없다 네 기쁨에는 곧 호흡이 없다 네 편.. 시로 여는 일상 2019.07.17
목덜미/ 박미란 목덜미/ 박미란 그 사람을 버리고 그사람에게 가는 동안 창문으로 비둘기가 날아왔다 찬란하다 날짐승이여 흔들리는 새벽의 음악이여 모든 색이 저 목덜미에서 나왔을까 파랑인가하면 피투성이 붉음, 붉음인가 하면 비명을 삼킨 검정의 기미 죽어서까지 기막히게 달라붙던 날짐승을 숨.. 시로 여는 일상 2019.07.11
박미란 강 강/ 박미란 아직은 낮이 길어요 언젠가 밤이, 한쪽 다리가 긴 밤이 오겠죠 느닷없이 과일이 익고 간신히 맺힌 물방울이 떨어지고 정오가 백일홍에 앉아 견디고 있네요 한 사람을 업고 강은 건너는 일 보일듯 보이지 않는 저편은 멀기만 한데 물살은 빠르고 물은 차갑고 무거워 지는 한 사.. 시로 여는 일상 2019.07.10
청진(聽診)북아현동/ 이현호 청진(聽診) -북아현동/ 이현호 나는 올해로 서른 살이 되었다 누구보다는 오래 살았고 누구보다는 일찍 죽는다 그때부터 오늘까지 지금부터 그날까지 내 모든 날의 별자리가 떨어져내리는 밤 당신의 이름을 부표로 띄우고, 마음의 수위를 더듬는 밤 오래 돌보지 않은 불행에게도 정이 드.. 시로 여는 일상 2019.07.08
아주 조금의 감정/ 이현호 아주 조금의 감정/ 이현호 어쩐지 누굴 잊고 있는 감정, 그의 안부보다 생면부지 외 국 가수의 비명횡사가 더 선명한 감정 인간이라는 말은 악기에게 더 어울리는 감정, 켤 줄 모르 는 악기의 울음을 타인의 손끝으로 듣는 감정 나는 왜 오랫동안 인간을 상상할까, 내가 인간이면서도 길거.. 시로 여는 일상 2019.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