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구름을 빙자하여 강재남

생게사부르 2019. 8. 29. 10:25

 

구름을 빙자하여/ 강재남



비가 내린다 희극적으로 때로 냉소적으로 또는 그런 것
으로, 구름의 서식지는 허공이다 입술이다 마비된 혀끝이
다. 라고 쓴다 네 입술은 촉촉하고

너는 페루로 떠났다 구름의 근육이 만져진다 허공을 찢
으며 구름이 무너진다 살아서 일렁이는 것들, 이라고 쓴
다 네 입술은 촉촉하고

행복하니? 라고 쓴다 행복하다는 말은 슬프다는 말의
동의어, 구름의 서식지는 커튼이다 옥상 귀퉁이다 빨랫줄
이다, 라고 쓴다 네가 떠난 도시에 따갑고 낯선 네가 떠
다닌다

너를 탕진한 너는 페루를 떠나지 못한다 비를 탕진한
구름은 구름을 떠나지 못한다 구름으로 주름을 만들고 유
리창을 만들고 식탁을 만들고

닳아버린 식탁에서 구름을 먹는다 너는 페루로 떠났고
비가 내린다 희극적으로 때로 냉소적으로 또는 그런 것으로

구름의 서식지는 생강나무 그늘이다 차고 단단한 틈이
다 무감각한 문장이다, 라고 쓴다 생강꽃이 부풀고 구름
은 은밀해지고 너는 페루로 떠났고,



 

 페루 쿠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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