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1052

가기전에 쓰는 시 글들

가기전에 쓰는 시 글들/ 허수경 귤 한 알, 창틀 위에 놓아두고 병원엘 갔지. 지난 가을에는 암 종양이 가득 찬 위를 절개했다. 그리고 겨울, 나는 귤 한 알이 먹고 싶었나 보다. 귤 한 알 인공적으로 연명하는 나에게 귤은 먹을 수 없는 것이지만 나는 그 작은 귤의 껍질을 갔다. 코로 가져갔다. 사계절이, 콧가를 스치며 지나갔다. 향기만이. 향기만이. 그게 삶이라는 듯. - 가기전에 쓰는 시 글들 2019.10. 난다 * * * 위암 수술을 하고... 얼마나 먹어 보고 싶었을까 눈 앞에 떠 올리기만 해도,' 귤'이라고 발음만 해 봐도 새콤달콤 신맛이 입안에 고일 사람은 가고 없는데, 그 생각들은 남아 시가 될지 글이 될지...위 글은 시 아닌 글이라는 얘기겠다 결국 ' 향기만 남을 삶' 이 글을 읽고 시..

김희준 오후를 펼치는 태양의 책갈피

오후를 펼치는 태양의 책갈피/ 김희준 글을 모르는 당신에게서 편지가 왔다 흙이 핥아주는 방향으로 순한 우표가 붙어 있었다 숨소리가 행간을 바꾸어도 정갈한 여백은 맑아서 읽어낼 수 없었다 문장의 쉼표마다 소나기가 쏟아졌다 태양은 완연하게 여름의 것이었다 고향으로 가는 길에선 계절을 팔았다 설탕 친 옥수수와 사슴이 남긴 산딸기 오디를 바람의 개수대로 담았다 간혹 꾸덕하게 말린 구름을 팔기도 했다 속이 덜 찬 그늘이 늙은호박 곁에 제 몸을 누이면 나만 두고 가버린 당신이 생각났다 찐 옥수수 한 봉지 손에 들었다 입안으로 고이는 단 바람이 평상에 먼저 가 앉았다 늦 여름이 혀로 눌어 붙고 해바라기와 숨바꼭질을 하던 나는 당신 등에 기대 달콤한 낮잠을 꾸었다 해바라기는 태양을 보지 않고도 키가 자란다 기다리는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