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1052

조정인 폐허라는 찬란

폐허라는 찬란/ 조정인 죽음을 미리 끌어다 생필품으로 쓰는 종족이 있다. 아침이면 두런두런 죽 음을 길어 어깨에 붓거나 발등에 붓는다. 입안을 헹구고 향로에 붓는다. 쿠 키를 만들어 접시에 덜거나 우묵한 찻잔, 영원의 바닥까지 그것을 따른다. 일테면 모든 길은 죽음으로 나 있는 명백한 등을 대낮에도 밝혀두는 종족. 추상이 구체를 뒤집어 쓰는 계절. 먼 목련이 기억을 더듬어 올해의 목련 에게로 거슬러온다. 나무 안에 은어 떼 점차 맑아온다. 혹한과 가뭄,뿌리 가 받아 마신 그늘의 총량이 제련한 저렇게 서늘한 빛. 죽음을 목전에 둔 짐승처럼 꽃으로 성장한 나무가 목을 들어 길게 운다. 오후 3시, 흰 꽃그늘 아래서는 누구라도 백발이 성성한, 낯선 영역의 인 간이 된다 올해의 목련이 뎅그렁뎅그렁 조종을 흔들며..

어느 날, 우리를 울게 할/ 이규리

어느 날, 우리를 울게 할/ 이규리 노인정에 모여 앉은 할머니들 뒤에서 보면 다 내 엄마 같다 무심한 곳에서 무심하게 놀다가 무심하게 돌아갈, 어깨가 동그럼하고 낮게 내려 앉은 등이 비슷하다 같이 모이니 생각이 같고 생각이 같으니 모습도 닮는 걸까 좋은 것도 으응, 싫은 것도 으응, 힘주는 일 없으니 힘드는 일도 없다 비슷해져서 잘 굴러 가는 사이 비슷해져서 상하지 않는 사이 앉은 자리 그대로 올망졸망 무덤 같은 누우면 그대로 잠에 닿겠다 몸이 가벼워 거의 땅을 누르지도 않을,* 어느 날 문득 그 앞에서 우리를 울게 할, 어깨가 동그럼한 어머니라는, 오, 나라는 무덤 * 브레히트의 시 ' 나의 어머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