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얼룩말 감정/ 최문자

생게사부르 2019. 8. 26. 09:43

 

 

얼룩말 감정/ 최문자


 

재가 된 그를
북쪽으로 가는 거친 파도위에 뿌렸지만

그는 익사하지도 떠오르지도 않았다

죽음은 아무래도
내게 잘못 보내 주신 낯선 짐승

도심 어느 골목에 멍하게 서있는 얼룩말 한 마리

 

그가 없는 밤이 지나가면

밤이 왔다

 

우리만 모두 살아 있는 새벽

내다버린 유품들이 비를 맞았다

 

죽음은

한장을 넘기면 또 한장의 털이 다른 가슴

 

무턱대고 감정을 만드는 모조 같은 하양과 검정

부스럭거리며 살아서 온다

 

전에는 닳도록 시만 썼는데

시에서 한 사람을 빼는 일

 

안보일 때까지 깜빡거리는 흑백의 잔등이다

 

검었다 하얘졌다 하는 심장 사이 
하는 수 없이 숫자로 가는

눈물 투성이 초침사이

 

내일 켜질 불빛은 또 다른 검정감정

 

내가 아닌 그도 아닌

이것은 어떤 잠일까

 

스칠 때마다 슬픈소리가 났다

 

세상은 언제부터

나를 마구 읽어내는 독자가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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