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시거미 / 이삼현 그녀와 나 사이 서먹해진 간격에 집을 지은 거미가 한 점 침묵으로 매달렸다 말끝을 세운 몇 가닥 발설이 한데 얽혀 덫이 되고 하루, 이틀, 사흘 무엇을 먹었는지 마셨는지 소식도 없이 제자리에 멈춰있다 나는 여문 것을 좋아하고 그녀는 부드러운 걸 좋아했지만 거미의 식성은 육식성이다 단단한 저녁이 말랑말랑해진 태양의 육즙을 천천히 빨아 삼키는 동안 거미는 한마디 미동도 없이 어두워졌다 몰래 들여다봐도 내통도 없다 팽팽하게 벌어진 틈새를 붙잡고 며칠째 끈적끈적한 긴장의 끈을 당기는 저 고집은 불통이다 꼭 돌아올 거라며 활짝 열어둔 오늘이 무음(無音)으로 져도 마음은 나팔처럼 불 수가 없다 경계를 풀고 다가올 기척 하나 놓치지 않으려는 순간이 쉼표 없는 기다림으로 이어지고 죽은 듯 산 듯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