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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치볼/ 이승희

캐치볼/ 이승희 공을 던진다 어디에도 닿지 않고 그만큼 나의 뒤는 깊어진다 내가 혼자여서 나무의 키가 쑥쑥자란다 내가 던진 공은 자꾸 추상화 된다 새들은 구체적으로 날아가다가 추상화 되고 생기지 않은 우리 속으로 자꾸만 공을 던진다 거짓말처럼 저녁이 오고 밤이 오고 오는 것들은 일렬로 내 앞을 지나간다 칸칸이 무엇도 눈 맞추지 않고 잘 지나간다 모든것이 구체적으로 추상적이다 나는 불빛 아래서 살았다 죽었다 한다 거리를 가늠할 수 없는 세계가 지루해지기 시작한다 나는 여전히 공을 던진다 내가 혼자가 아니라도 달라지는 건 없다

꽃무릇 철

영광 불갑사 꽃무릇 석산, 상사화, 피안화,노아산. 상오독, 산두초 야산, 석산화... 불리는 이름도 참 많네요 구월에 꽃이 피고 꽃진 시월에 난 잎은 한겨울을 견디고 이듬해 늦은 봄(5월)에 시들어 사라진답니다 가늘고 긴 줄기 위 정열적인 붉은 꽃 꽃말 ' 이룰 수 없는 사랑' 은 잎과 꽃이 결코 서로 만날 수 없는 운명이라서 '참사랑'은 가을에 핀 잎이 추운 한겨울을 견뎌내고 꽃을 피우기 위한 준비만 하면서 헌신하다 죽는다는데... 나중에 자랄 꽃과 열매를 위해 일생을 다 바치는 잎, 다른 꽃들이 한창인 5월부터 시들다가 8월 초 잎이 완전히 자취를 감춘 후 1M 가량의 솟대가 쑥 솟고 9월 꽃대 머리에 산형 꽃차례가 피게 된다고... 5년전, 영광 불갑사 꽃무릇 장관을 보고나니 그 포만감 십년은 안..

사진 이야기 2020.09.25

친애하는 언니/김희준

친애하는언니/김희준 유채가 필 준비를 마쳤나봐 4월의 바람은 청록이었어 손 가락으로 땅에 글씨를 썼던가 계절의 뼈를 그리는 중이라 했지 옷 소매는 죽어버린 절기로 가득했고 빈 틈으로 무엇을 키우는지 알 수 없었어 주머니에 넣은 꽃잎을 모른 체했던 건 언니의 나라에선 누구도 시들지 않기 때문. 박음질이 풀릴 때 알았지 실로 제봉된 마음이었다는 걸 의 사는 누워있으라 했지만 애초에 봄은 흐린 날로 머무는 때 가 많았지 벚꽃과 유채가 엉킨 들판에 어린 엄마와 어린 언 니가 있어 놀이기구가 안개 속에 숨어 있었던 거야 숨바꼭 질을 좋아하던 언니가 이불과 옥상과 돌담 그리고 유채꽃과 산새와 먹구름 속으로 달려가는 한 때 비가 내리고, 물의 결대로 살 수 없다면 늙지 않은 그 곳으로 가자 소매 안에 훔쳤던 벚나무에..

백일홍/ 장만호

백일홍/ 장만호 개심사 배롱나무 뒤틀린 가지들 구절 양장의 길을 허공에 내고 있다 하나의 행선지에 도달할 때까지 변심과 작심 사이에서 마음은 얼마나 무른가 무른 마음이 파고 들기에 허공은 또 얼마나 단단한가 새가 앉았다 날아간 방향 나무를 문지르고 간 바람이, 붐비는 허공이 배롱나무의 행로를 고쳐놓을 때 마음은 무르고 물러서 그때마다 꽃은 핀다 문득문득 핀 꽃이 백일을 간다 사진: 남계서원 꽃 피지 않은 배롱나무

약속된 꽃이 오기만을 기다리면서 묻는 말들/ 이원하

약속된 꽃이 오기만을 기다리면서 묻는 말들/ 이원하 지금 여기는 물밖에 없어요 물이 몇 장으로 이루어져야 바다가 되는지 수분은 알까요 오늘따라 바다가 이름처럼 광야처럼 잔잔해요 잔잔해서 결이 없으니 바다가 몇 장인지 어떻게 셀까요 이와 비슷한 어려운 일들을 어려운지 몰라주며 세다보면 순간순간이 별거 아닌 것처럼 세다보면 선배처럼 될 수 있어요? 지금 거긴 꽃밖에 없어요 책에서 읽었는데 수분의 기운만 있다면 바다를 건너 꽃밭에 갈수 있대요 선배처럼 다른 소리지만 자다가 들었는데 파도가 잔잔해지면 가슴을 쓸다가 마음이 미끄러진대요 선배를 바라다보니 밤낮이 바뀌네요 밤하늘 촘촘 박힌 별을 보고 있자니 버리자니 많이 그런 어둠이네요 이 어둠처럼 내일 낮을 살아갈 거예요 선배, 이렇게 말해본 적 있으시죠 ' 약속..

멕시코 아카풀코

이제 여름은 지난 계절이 되고 있습니다 이 비 그치면 완연한 가을일테고 추석이 다가오고 있고요 코로나로 위축되고 좀 갑갑해도 원거리로 어디 멀리갈 엄두를 못 내는데... 살아 있으니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는 게 사람인지라.. 전 세계적으로 우울증이나 신경정신증 환자가 늘어 난다네요 딸은 코로나 상황에 적응하고 판단이 섰는지 이미 두번이나 비행기를 탄 모양입니다. 과달라하라는 필히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 같고, 아카풀코는 좀 그렇긴한데... 배구시합에서 시간 차 공격을 예로들면 될지...사람들이 붐비지 않을 때 조심해서 잘 다녀오면... 갑갑한 마음이 확 뚫리면서... 생활의 활력이 될 수도 있긴하겠네요 그곳은 우리보다 더 조심해야 하는데... 늘 조심하며 다니라고 할 밖에요. 이전 사진과 섞여 있는데....

서랍/ 신태희

서랍/ 신태희 입술 사이로 빗금이 흘러나와요 축축하지만 단호하지요 아침이랑 저녁은 이렇게 다른거예요 빛나던 것들이 어떻게 빛을 잃어가는지 하루만 살아봐도 알지요 간단하지요 이쪽과 저쪽, 그 사이 저녁 산둘기기처럼 꾸욱 꾹 가슴속으로 밀어넣어요 잿빛 눈동자를 구겨넣어요 살아내는 계절마다 서랍이 생겨나요 서랍은 서랍의 냄새로 서러워질 거예요 나프탈렌 동그랗고 하얀 눈물 냄새가 나요 그 사이로 내가 사라져요

일상의 주변, 마산 완월동

' 걸을 때까지 인간'임을 충실히 실천하는 일상이다 장 보러, 버스 타러 오가고, 운동하러 갈 때...기회만 되면 걷는다 걸어 다니다 보면 차를 타고 다닐 때 보이지 않던 것들 이것, 저것 눈에 뜨이는 것들이 있다 더워서 쩔쩔 맸는데.. 비 온 후 하루사이에 나 뒹구는 낙엽 동네서 만나는 카페 카페 앞 꽃 장식 소품판매를 겸한 카페 마산은 자연발생 도시라 골목길이 많은데 자주 다니다 보면 지름길을 알게 된다 관심 있게 보면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사이에서 올라오는 식물들을 볼 수 있는데 독보적으로 예쁘게 피어 있어서 발길을 멈췄다. 어디 다른데서 꺾어 갖다 세워 놓았나 싶어 구부려 확인을 했다는... 3주 뒤에 지나다 보니 꽃은 지고 이렇게... 화분에서 자라는 화려한 아이들을 만나기도 하면서... 갈 길 ..

꽃이라는 기호의 모습/강재남

꽃이라는 기호의 모습/강재남 우는 법을 잘못 배웠구나 바람은 딴 곳에 마음을 두어 근심이고 환절기는 한꺼번에 와서 낯설었다 오후를 지 나는 구름이 낡은 꽃등에 앉는다 매일 같은 말을 하는 그는 옹색한 시간을 허비하기 위해서다 눈시울 붉히는 꽃은 비극을 좀 아는 눈치다 비통한 주름이 미간에 잡힌다 구름의 걸 음을 가늠하는 것만큼 알 수 없는 꽃의 속내, 연한 심장을 가진 꽃은 병들기 좋은 체질을 가졌다 그러므로 생의 어느 간절함에서 얼굴하나 버리면 다음 생에도 붉을 것이다 얼굴이 수시로 바뀌는 계절에는 풍경이 먼저 쏟아졌다 헐거운 얼굴이 간단 없이 헐린다 낭만을 허비한 구름은 말귀가 어둡다 색을 다한 그가 급하게 손을 내민다 구름이 무덤으로 눕기 전에 꽃은 더 간절해져야 함으로 울기에 적당한 시간이다 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