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은 신발을 닮았다 / 이원
발을 넣으려는 순간 왈칵 어두운
현관의 두 짝 신발이 축축하게
제 몸을 다 벌리고 있다
허공에 있던 발을
내리고 주저앉으니
공기의 냄새가 비어 있다
신발 안을 들여다 본다 꾹꾹
몸이 걸었으므로 길이 되어버린
마음이 우글우글하다
신발을 굽어보던 빈 몸이
뻣뻣해 벽에 몸을 기댄다
길이 되지 못한 벽이 움찔거려
기댄 벽이 무겁다 세계의
어디서나 출입구는
입과 항문처럼 뚫여 있다
두 발로 단단한 바닥을
딛으며 다시 일어선다
(새삼 발자국은 신발을 닮았다!)
신발 속으로 현실의 발을 집어 넣는다
그 속은 아득하고 둥글다
한 발을 살짝 문 밖으로 내민다
덥썩 세계의 입이 닫힌다
'시로 여는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옛, 성윤석 (0) | 2020.11.18 |
---|---|
아무나 씨에게 인사/ 김희준 (0) | 2020.11.13 |
단풍여자 고등학교/윤동재 (0) | 2020.11.02 |
단풍속으로/ 박명숙 (0) | 2020.10.29 |
싱싱한 죽음/ 김희준 (0) | 2020.1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