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음의 안감/ 정선희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 설익어 목소리가 갈라지는 울음이 있고, 색을 덧발라 속이 안 보이는 울음이 있고, 물기가 가득해서 수채화처 럼 번지는 울음이 있다는 것을 어른이 우는 모습을 본 아이는 속으로 자란다 그날 호주머니의 구멍 난 안감처럼 울음을 움켜 쥔 손아귀에서 허무하다는 걸 알아버린다 그 후 내가 만난 모든 울음은 그날 밤에 바느질된 듯 흐느끼며 이어져 있다 실밥을 당기면 주르륵 쏟아질 그날의 목록들 외할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다섯 여자가 모여 앉아 울음 같은 모닥불에 사연 하나씩 쬐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모두에게 다른 사람, 몰랐던 사람이었다 관계란 아름답지 않은 한 줄 문장 같은 것을 붙잡고 있는 것 울음은 죽은이에게 가지 않고 자신을 적신다 얼룩질 텐데 죽음을 당겨 울음의 안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