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나씨에게 인사/ 김희준
아무나씨는 절박한 순간에 다정해지곤 했다
바닥에 붙어 걷는 내 오랜 습관과 상처 많은 무릎을 혼내는 일
누르는 만큼 들어가는 모래는 완만한 표정을 가져서
중력의 무게만큼 들어간다
그러면 나는 모르는 사람에게 아는 척 하고
아는 사람을 모르는 척하는 마음을 설명할 수 있을 텐데
내가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은 금방 친해질텐데
손에 손을 잡고 나를 떠나갈 텐데
아무나씨의 도드라진 등뼈를 만지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무거워진 마음은 목도리를 벗게하고
우리는 함께 겨울 바다에 갇혀야 할 명분을 얻기도 했다
가져본 적 없는 손가락이 환상통을 앓는 밤이면 마디가 아파온다
밤 하늘엔 도드라진 행성의 등뼈가 떠 있고
우린 밤하늘을 거대한 동물의 등뼈라 부르며 동물의 이름을 헤아린다
고대의 인류가 되어 서로의 등을 쓰다듬는다
아무나씨는 잘 길들인 짐승처럼 순하고 얇은 몸을 가진다
얇은 아무나씨를 모래성에 쌓는다 차곡차곡 달라붙는 아무나씨
그러다가 아무나씨는 왜 아무나씨인가
바다를 다 쓴다
까진 무릎에 닿는 모래알은 무거운 표정을 짓는다
빽빽한 내 눈을 아무나씨가 매 만질 때 단백질이 다 씻겨나간다
안 다쳤니,
아무나씨와 나는 아무 사이가 아닌데
우린 애인이 없어야 애인을 그리워할 수 있었다
'시로 여는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각시거미/ 이삼현 (0) | 2020.11.22 |
---|---|
옛, 성윤석 (0) | 2020.11.18 |
발자국은 신발을 닮았다/ 이원 (0) | 2020.11.11 |
단풍여자 고등학교/윤동재 (0) | 2020.11.02 |
단풍속으로/ 박명숙 (0) | 2020.10.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