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흥식 종이 소 박흥식 종이 소 어머니하구 늦은 저녁을 먹었다 무짱아찌와 멸치 우려내어 언제 갈거니? 건져낸 국수가 다왔다 " 살아 있는 것들에게 폭력을 쓰지마라 살아 있는 것들을 괴롭히지 마라.... 저 광야를 가고 있는 무소의 뿔처럼 외로이 가라"* 나는 소 한마리만을 남겨놓은 채 밤을 타고 떠나.. 시로 여는 일상 2017.11.25
나희덕 11월 나희덕 11월 바람은 마지막 잎새마저 뜯어 달아난다 그러나 세상에 남겨진 자비에 대하여 나무는 눈물 흘리며 감사한다 길가의 풀들을 더럽히며 빗줄기가 지나간다 희미한 햇살이라도 잠시 들면 거리마다 풀들이 상처를 널어 말리고 있다 낮도 저녁도 아닌 시간에, 가을도 겨울도 아닌 계.. 시로 여는 일상 2017.11.23
오정국 그 눈밭의 오줌 자국은 오정국 그 눈밭의 오줌 자국은 - 내설악 일기 4 눈 밭의 오줌 자국들, 실뱀이거나 구렁이거나, 뱀이 기어간 자국 같고, 흙벽에 붙여 놓은 통나무 땔감들, 듬직하구나 누렇게 눌어 붙은 장판지 같은 얼굴들, TV 연속극에 흠뻑 빠져 있겠구나 책을 읽어도 시 한 줄 건져 낼 게 없으니, 다리 힘줄.. 시로 여는 일상 2017.11.22
오정국 나는 저 눈꽃들에게 오정국 나는 저 눈꽃들에게 - 내설악 일기 9 배꼽티를 입고 서서, 저토록 영롱한 귀고리와 목걸이를 찰랑거리다니! 눈발 그친 아침의 눈꽃나무들, 첫 영성체 받는 날의 미사포 행렬 같구나 말 대가리처럼 생긴 나무에게도 주먹 고기마냥 뭉쳐진 덤불 위에도 눈꽃이 피었다 저 한 컷 한 컷의.. 시로 여는 일상 2017.11.21
이생진 방랑 이생진 방랑 방랑은 방생입니다 나에게서 나를 떼어놓는 방생입니다 내가 너무 나를 잡아 놓고 있었기에 이젠 내게서 떠나라고 나를 놔주는 것입니다 저놈이 커서 다시 내게로 돌아 올지는 두고봐야 할 일입니다 - 욕심으로 인해 인간의 생활과 영혼이 황폐해 집니다. 방랑은 그 욕심으로.. 시로 여는 일상 2017.11.21
박순원 바람의 검심 박순원 바람의 검심 술을 먹고 말을 타고 꾸벅꾸벅 졸며 집으로 돌아가는데 말이 옛 애인의 집에 다다랐다 나는 가슴이 너무 아팠으나 꾹 참고 지체없이 칼을 뽑아 말의 목을 내리쳤다 나는 말이 한 마리밖에 없었으므로 칼등으로 내리쳤다 나는 생명을 사랑했으므로 옛 애인은 반갑게 뛰.. 시로 여는 일상 2017.11.19
김충규 이별 후의 장례식, 유리창과 바람과 사람 이별 후의 장례식/ 김충규 너를 내 속의 무덤에 묻겠다고 쓴 네 편지를 받고 당혹스러웠다. 편지를 읽기 전까지 나 도 너를 내 속의 무덤에 묻고 있었다. 나는 말없이 편지를 찢으며 봉분을 다졌다. 나를 지 켜보고 선 살구나무가 풋 살구를 톡톡 떨궜다. 풋 살구를 한 입 깨물었다. 한 때 너는 나의 나 무에 열려 있던 붉은 살구였다, 지금은 서로 장례식을 치르지만. 먼 하늘가에서 몰려 온 먹 구름이 제 몸을 잘게 찢었다. 우우우-, 미친 늑대처럼 빗줄기가 울부짖었다. 내 몸은 빗줄 기에 후줄근히 젖어 들었다. 내 속의 무덤은 빗소리에 흠뻑 젖었다. 한순간 내 속이 자궁으 로 변했다. 망할 것, 나는 너를 낳고 싶었다. 유리창과 바람과 사람 유리창에서 바람이 미끌어진다 먼 곳에서 우리집 쪽으로 하염없이 밀려.. 시로 여는 일상 2017.11.18
김효숙 장엄미사, 가을빛 김효숙 장엄미사 나무는 지금 물드는게 아니고 버리는 중이다 태생이 붉은 알몸이라 봄부터 가을까지 푸른 물만 들이던 잎새는 물을 버리고 붉게 우화 한다 저 타오르는 단풍들 비우지 않고는 건널 수 없는 강 앞에서 어쩔수 없는 선택이다 깃털처럼 가볍게 내려앉기 위한 깨끗한 마무리 .. 시로 여는 일상 2017.11.17
권혁웅 슬하(膝下) 이야기 권혁웅 슬하(膝下) 이야기 내가 과외를 했던 삼수생의 어머니, 독실한 불자였지 아들 합격을 기원하느라 부처님 앞에 아들 고3 때 천 배, 재수할 때 천 배, 삼수할 때 천배, 도합 3천 배를 올리느라 무릎이 깨졌지 절할 때마다 오체투지를 했으니 3천 곱하기 5, 도합 1만 5천개의 몸을 땅에 던.. 시로 여는 일상 2017.11.16
박상순 무궁무진한 떨림 박상순 무궁무진한 떨림, 무궁무진한 포옹 그럼, 수요일에 오세요. 여기서 함께해요. 목요일부턴 안 와요. 올 수 없어요. 그러니까, 수요일에 나랑 해요. 꼭, 그러니까 수요일에 여기서 … 무궁무진한 봄, 무궁무진한 밤, 무궁무진한 고양이, 무궁무진한 개구리, 무궁무진한 고양이들이 사.. 시로 여는 일상 2017.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