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지우 눈보라 황지우 눈보라 원효사 처마끝 양철 물고기를 건드는 눈송이 몇 점 돌아보니 동편 규봉암으로 자욱하게 몰려가는 눈보라 눈보라는 한 사람을 단 한사람으로만 있게 하고 눈발을 인 히말라야소나무 숲을 상봉으로 데려가 버린다 눈보라여, 오류 없이 깨달음 없듯,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는 .. 시로 여는 일상 2017.12.21
최승호 대설주의보 최승호 대설주의보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들, 제설차 한 대 올 리 없는 깊은 백색의 골짜기를 메우며 굵은 눈발은 휘몰아치고, 쬐그만한 숯덩이만 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굴뚝새가 눈보라 속으로 날아간다. 길 잃은 등산객들 있을 듯 외딴 두메마을 길 끊어 놓을 듯 은하.. 시로 여는 일상 2017.12.20
김경주 폭설, 민박, 편지1 김경주 폭설,민박,편지1 주전자 속엔 파도소리들이 끓고 있었다 바다에 오래 소식 띄우지 못한 귀먹은 배들이 먼 곳의 물소리를 만지고 있었다 심해 속을 건너오는 물고기 떼의 눈들이 꽁꽁 얼고 있구나 생각했다 등대의 먼 불빛들이 방 안에 엎질러지곤 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푸른 멀미.. 시로 여는 일상 2017.12.17
김경주 기미(幾微)- 리안에게 김경주 기미(幾微) - 리안에게 황혼에 대한 안목(眼目)은 내 눈의 무늬로 이야기하겠 다 당신이 가진 사이와 당신을 가진 사이의 무늬라고 이 야기하겠다 죽은 나무 속에 사는 방(房)과 죽은 새 속에 사는 골목 사이에 바람의 인연이 있다 내가 당신을 만나 놓친 고요 라고 하겠다 거리를 저.. 시로 여는 일상 2017.12.15
김경주 외계(外界) 김경주 외계(外界) 양팔이 없이 태어난 그는 바람만을 그리는 화가(畵家) 였다 입에 붓을 물고 아무도 모르는 바람들을 그는 종이에 그려 넣었다 사람들은 그가 그린 그림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붓은 아이의 부드러운 숨소리를 내며 아주 먼 곳 까지 흘러갔다 오곤 했다 .. 시로 여는 일상 2017.12.13
최승호 방부제도 썩는 나라, 악마의 배설물 최승호 방부제도 썩는 나라 모든게 다 썩어도 뻔뻔한 얼굴은 썩지 않는다 악마의 배설물 몇 해전 볼리비아 원주민들에게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말씀하셨습니다. " 돈은 악마의 배설물입니다." 12세기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성인도 그 말씀을 자주 하셨지요. " 돈은 악마의 배설물입니다." 로마의 바실리우스 주교님도 이미 4세기에 그 말씀을 하셨습니다. " 돈은 악마의 배설물입니다." 똥이나 먹자 똥이나 먹자 내 안에도 넘치는 악마의 배설물 속에서 뚱뚱한 황금구더기들이 더 뚱뚱해지자고 버둥댑니다. * * * 멕시코 시티 공원에 있던 조각상입니다 특별히 악마가 있을라나요 평범한 사람이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천사가 되기도 하고 악마나 괴물이 되기도 하겠지요 사회적 분위기나 시대적 여건에 휩쓸려 괴물이 되기도 하지.. 시로 여는 일상 2017.12.12
최승호 나와 나타샤와 당나귀 식당, 머리 잘린 개구리 최승호 나와 나타샤와 당나귀 식당 당나귀 요리 전문 식당이 문을 열었다는데 백석의 '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생각나는데 당나귀 스테이크를 먹어야 하는 것인지 백석의 '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생각나는데 먹기 위해 살아야 하는 것인지 살기 위해 먹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시로 여는 일상 2017.12.11
김광규 나뭇잎 하나 김광규 나뭇잎 하나 크낙산 골짜기가 온통 연록색으로 부풀어 올랐을 때 그러니까 신록이 우거졌을 때 그곳을 지나가면서 나는 미처 몰랐었다 뒷절로 가는 길이 온통 주황색 단풍으로 물들고 나뭇잎들 무더기로 바람에 떨어지던 때 그러니까 낙엽이 지던 때도 그 곳을 거닐면서 나는 느.. 시로 여는 일상 2017.12.10
천수호 내가 아버지의 첫 사랑이었을 때 천수호 내가 아버지의 첫사랑이었을 때 아버지는 다섯 딸 중 나를 먼저 지우셨다 아버지께 나는 이름도 못 익힌 산열매 대충 보고 지나지칠 때도 있었고 아주 유심히 들여다볼 때도 있었다 지나칠 때보다 유심히 눌러볼 때 더 붉은 피가 났다 씨가 굵은 열매처럼 허연 고름을 불룩 터뜨리.. 시로 여는 일상 2017.12.09
천수호 심심 심중에 금잔디, 하관(下棺) 천수호 심심 심중에 금잔디 아버지 시신을 파먹고 자란 잔디 사이에서 아버지 시즙을 빨아먹고 자란 잡초를 뽑아낸다 그렇게 순종만을 원하던 아버지, 아버지 몸에도 잡 것이 있었군요 아버지 묻히고 나서야 내 몸에 잡기가 있다는걸 증명해주는 건가요 아버지, 차라리 잡초를 두고 잔디.. 시로 여는 일상 2017.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