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오정국 그 눈밭의 오줌 자국은

생게사부르 2017. 11. 22. 02:05

오정국


그 눈밭의 오줌 자국은
          - 내설악 일기 4


 

눈 밭의 오줌 자국들, 실뱀이거나
구렁이거나, 뱀이 기어간 자국 같고, 흙벽에 붙여 놓은
통나무 땔감들, 듬직하구나 누렇게 눌어 붙은
장판지 같은 얼굴들, TV 연속극에 흠뻑 빠져 있겠구나
책을 읽어도 시 한 줄 건져 낼 게 없으니,
다리 힘줄 땡겨 보는
오후 산책길, 거울에 비친 엉덩이가
비 바람에 허물어진 담벼락 같아서, 이렇듯
다리 힘줄 땡겨보는 것인데, 이토록 어여쁜
꽃자리가 있었다니! 다소곳한 앉음새의
오줌 자리들, 오목한 항아리의 꽃 단지 같은데,
거기에다 오줌 줄기 내 뻗는
군홧발들, 혹한기 훈련의 콧김을 내뿜으며
눈 덮인 소나무 숲으로 사라져 갔다
나는 거기에다 오줌을 누지 않았지만, 몸서리치듯
아랫도리를 부르르 떨었다
눈 구덩이의 오줌 구멍이 말벌집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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