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인 아껴 먹는 슬픔, 장철문 매화 유종인 아껴 먹는 슬픔 재래식 화장실 갈 때마다 짧게 뜯어가던 두루말이 화장지들 내 밑바닥 죄를 닦던 낡은 성경책이 아닐까 떠 올린적이 있다 말씀이 지워진 부드럽고 하얀 성경책의 화장지! 외경(畏敬)의 문 밖에서 누군가 나를 노크할 때마다 나는 아직 罪를 배설중입니다 다시 문을 .. 시로 여는 일상 2018.01.09
장석남 살얼음이 반짝인다, 문인수 정월 장석남 살얼음이 반짝인다 - 첫 추위 가장 낮은 자리에선 살얼음이 반짝인다 빈 논바닥에 마른 냇가에 개밥 그릇 아래 개 발자국 아래 왕관보다도 시 보다도 살얼음 반짝인다 "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 문인수 정월 농촌 들녘을 지나는데 춥고 배고프다 저 노인네 시린 저녁이 내 속에.. 시로 여는 일상 2018.01.07
고은희 밀풀 고은희 밀풀 1. 밀풀에서 꽃이 폭폭 끓는다. 부풀어 오른 밀풀은 겨울과 여름에 유용하다. 문살에 밀풀을 바르고 창호지를 바르고 무성한 숨을 바른다. 덩달아 지붕위로 하얗고 얇은 첫눈이 내린다 귓불이 떨어져 나간 단풍잎 몇 개가 붓살이 쓸고 간 거친 자리에 폴짝 내려 앉는다. 겨울 .. 시로 여는 일상 2018.01.03
김수환 옥봉洞 세한도(시조) 푸른시교실 무술년 새해를 경사로 열게되네요. 김수환샘, 축하합니다. 김수환 옥봉洞 세한도 동네 점집 댓잎 끝에 새초롬한 간밤 눈 먼발치 새 발자국 저 혼자 샛길 가고 귀 닳은 화판 펼치고 바람이 먹을 간다 전봇대 현수막보다 더 휘는 고갯길을 리어카 끌고 가는 백발의 노송 한 그루 수묵의 흐린 아침을 갈필로 감고 간다 맨발의 운필로는 못 다 그릴 겨운 노역 하얀 눈 위에서도 목이 마른 저 여백 누대를 헐고 기워도 앉은뱅이꽃 옥봉동 2018. 경상일보 신춘문예 시조부문 당선작 약력: 1963. 경남함안 중앙시조 백일장 장원 시로 여는 일상 2018.01.01
김경주 내 워크맨 속 갠지스 김경주 내 워크맨 속 갠지스 외로운 날엔 살을 만진다 내 몸의 내륙을 다 돌아다녀본 음악이 피부 속에 아직 살고 있는지 궁금한 것이다 열두 살이 되는 밤부터 라디오 속에 푸른 모닥불을 피 운다 아주 사소한 바람에도 음악들은 꺼질 듯 거질 듯 흔 들리지만 눅눅한 불빛을 흘리고 있는 .. 시로 여는 일상 2017.12.29
유희경 여름 팔월 유희경 여름 팔월 여름 팔월은 참 짙고 아득해서 나는 그렇게 있다 이 곳엔 볕이 너무 많아 귀하지 않지 다리를 떨면서 다리를 떠는군 생각하면 서 나는 아무 건물 아무 층 아무 사무실 아무 창문 위에서 볼 수 있는 아무 블라인드와 같은, 여름 팔월의 볕 구석에 매달린 흔하고 틈 많은 사.. 시로 여는 일상 2017.12.28
황인찬 이것이 나의 최악, 그것이 나의 최선 황인찬 이것이 나의 최악, 그것이 나의 최선 이 시에는 바다가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이 시는 우리가 그 여름의 바다에서 돌아온 뒤 우리에게 벌어진 일들과 그것이 우리의 삶에 불러일으킨 작은 변화들에 대해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어느 토요일 오후 책장에 올려둔 소라 껍데기.. 시로 여는 일상 2017.12.27
김경주 무릎의 문양 김경주 무릎의 문양 1 저녁에 무릎, 하고 부르면 좋아진다 당신의 무릎, 나무의 무릎, 시간의 무릎, 무릎은 몸의 파문이 밖으로 빠져 나가지 못하고 살을 맴도는 자리 같은 것이어서 저녁에 무릎을 내려놓으면 천근의 희미한 소용돌이가 몸을 돌고 돌아온다 누군가 내 무릎 위에 잠시 누워 .. 시로 여는 일상 2017.12.24
백상웅 고비 백상웅 고비 내 입술은 천 근, 네 발랄은 만 근. 꼭 막다른 골목까지 가봐야 멸렬의 무게를 아는 건 아니지. 아무데나 앉은 의자에 박혀 나사처럼 먹고 사는 일, 뭉개진 나사머리를 드라 이버로 돌려 빼낼 도리는 없는 일. 그늘 무거운 산 하나쯤 의자에 앉을 때 아는 얼굴이 뒤통수가 되다.. 시로 여는 일상 2017.12.23
김경주 먼 생 김경주 먼 생 - 시간은 존재가 신(神)과 갖는 관계인가* 골목 끝 노란색 헌옷 수거함에 오래 입던 옷이며 이불들을 구겨 넣고 돌아온다 곱게 접거나 개어 넣고 오지 못한 것이 걸린지라 돌아보니 언젠가 간장을 쏟았던 팔 한쪽이 녹은 창문처럼 밖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어둠이 이 골목의 내.. 시로 여는 일상 2017.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