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권혁웅 슬하(膝下) 이야기

생게사부르 2017. 11. 16. 08:31

권혁웅


 

슬하(膝下) 이야기


내가 과외를 했던 삼수생의 어머니, 독실한 불자였지 아들 합격을 기원하느라 부처님 앞에 아들 고3 때 천 배, 재수할 때 천 배, 삼수할 때 천배, 도합 3천 배를 올리느라 무릎이 깨졌지

절할 때마다 오체투지를 했으니 3천 곱하기 5, 도합 1만 5천개의 몸을 땅에 던진 거였는데, 그때 어머니 무릎은 얼마나 헷갈렸을까 머리와 팔이 세 번 무너질 때 두 번씩 무너져야 했으니

하라는 공부는 안하던 삼수생에게 그건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은 거였겠지 뭐 무릎이 계란은 아니지만, 그 삼수생 돌부처처럼 꿈적도 하지 않았지만, 대신 그릇이 깨졌으니

이눔아, 니 에미를 잡아먹어라 내가 어떻게 엄마를 먹어? 대신 계란프라이나 먹을래, 뭐 이런 식이었겠지 무릎과 무릎 사이에서 그 아들, 먹고 자고 놀고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그 어머니, 지금도 방바닥을 닦을 때마다 제가 깬 계란을 치우고 있겠지


- 시집『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 (창비,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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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웅 시인 특유의 시선과 시풍으로 ' 수능'을 준비하는 당사자 본인의 태평함과 그 어머니의 애타는 심정이 해학적으로

그려졌지만 , 우리나라에서 ' 대학 수능'은 그 당사자와 가족들 뿐 아니라 전 국가적인 중대사인데

' 지진' 이라는 천재지변으로  수능이 연기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 했습니다.

 

수능 감독을 해 봤고, 수능고사장 준비를 해 봤으며 학부모로서 두 아이들 수능을 치뤄봤으니 수능이 연기된다는 게

어떤 의미이며 한국 교육계에 어떤 혼란을 가져오는지 그로 인해 대학입시 일정에 어떤 차질을 가져 올지 잘 압니다.

수능을 주관하는 업무부처나 정부가 ' 수능 일주일 연기' 결정을 내리기까지 어떤 고민을 했을지 짐작이 갑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이 위협 받는 일, ' 생명에의 안전'이 그 어떤 가치에 앞서 우선 한다는 것

사회적으로 서로 공감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지난 달 멕시코에서 지진대피를 두번 했었고, 깐꾼 여행을 다녀와서 지진의 후유증을 직접 다니면서 눈으로 봤습니다.

금간 건물에 둘러쳐져 있던 황금색 경고줄, 노랑줄, 초록줄, 사람을 비우고 무너지도록 기다리는 대책없는 건물 부터

폭삭 무너져 내려 앉은 건물까지 목격했고 두번 식사를 하러 갔던 한국인 식당이 일부 내려 앉아 발길을 돌린 일 

공원에 천막을 치고 구호를 받던 이재민들... 100명 가까운 사망자가 발생 했고, 사십중반의 한국인 한명이 사망했었습니다. 

 

' 무소식이 희소식' 이란 말이 있지만 개인의 일상과 항상성이 유지될 있다는 게 크나큰 축복이라는 것은 그 일상이

유지 될 때는 잘 알지 못합니다. 심지어 개미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일상을 권태로워하면서 

 '어떤 특별한 일이 터져 일상을 휘저어'주기를 바랄 때도 있지요.

 

평소 공기와 물이 고마운 줄 모르다가 극한 상황이 오면 그 이상 소중한 것이 없다는 걸 알게되는 것처럼

'일상이 유지되는 것' 그 일상을 바탕으로 조금씩 향상되고 점진적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

 

우리나라가 더 이상 지진안전지대가 아니란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작년 경주 지진 때 침대에 앉아 있었고, 어제도 의자에 앉아 컴퓨터 업무를 보고 있었습니다.

본인이 움직이고 있었던 사람들은 잘 감지를 못했던데 저는 평행하게 앉아 있었던 탓에 지진을 실감나게 감지 했습니다.

지난 번 멕시코 지진의 경험으로 집 밖으로 튀어 나왔는데... 이웃들은 조용하고 잠잠 했습니다.

 

어제 무너지거나 금간 건물에 대한 우려와 지진 내진 설계에 대해 경각심을 일깨우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네요.

멕시코는 지진 취약지대라 거리에 일체 입체적인 간판이 없습니다. 평소 지진이 일어 날 걸 예상해서 흔들려 떨어지면

치명적으로 상처를 입을 물건을 높은 곳에 두지 않는다든지...컵에 물을 담아두고 흔들림을 감지하던 생각이 납니다.

 

결국 원칙을 깨뜨리고 얕은 꾀를 쓰는 이유는 당장 눈앞의 경제적 이익일텐데...이번 기회에 정부의 제도적 보완과

엄격한 관리와 겸하여 건물주나 건설업자들의 양심 회복의 계기가 되었으면 싶습니다.

 

 

어제 지진의 여파가 빨리 복구되어 이재민들의 일상이 회복되고  다음 주 수능이 계획대로 실시되어

일년을 보내는 국가의 교육일정이 잘 마무리되고 그 일에 관련된 수험생들의 대학 입시가 차질 없이 진행되어

개인의 일상이 다시 회복 될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사진 : 지진으로 파손된 건물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