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선경 까마귀가 쌓이다 성선경 까마귀가 쌓이다 장난과 눈과 눈덩이를 나는 잊네 내가 던진 돌들에 대해 나는 잊네 내가 던진 돌들이 가 닿는 곳에 대해 나는 잊네 개구리와 웅덩이와 마음에 대하여 나는 잊네 동백이 떨어진 것을 잊고 동백이 떨어진 자리를 잊고 동백이 떨어져 이월이 가고 삼월이 간 그늘을 잊.. 시로 여는 일상 2017.11.14
임승유 근무 임승유 근무 울타리를 지날 때 나도 모르게 쥐었던 손을 놓았다 나팔꽃의 형태를 따라 한 것이다 오므렸다가 폈다가 안에 든 것이 뭔지 모르면서 그랬다 살아 있다면 뛰어다녔을 것이고 뛰어다니면 어지럽고 뛰어다니면 시끄러우 니까 쉬는 시간인가 보다 그러면서 붓 같은 걸로 살살 털.. 시로 여는 일상 2017.11.12
임영조 갈대는 배후가 없다 임영조 갈대는 배후가 없다 청량한 가을볕에 피를 말린다 소슬한 바람으로 살을 말린다 비천한 습지에 뿌리를 박고 푸른 날을 세우고 가슴 설레던 고뇌와 욕정과 분노에 떨던 젊은 날의 속된 꿈을 말린다 비로소 철이 들어 선문에 들 듯 젖은 몸을 말리고 속을 비운다 갈대는 갈대가 배경.. 시로 여는 일상 2017.11.12
성은주 방 성은주 방 식물이 자라는 속도로 조금은 알 것 같은 그림을 그렸다 매일 색다른 물감으로 다르게 보이는 연습을 끝내면 차가운 문고리를 잡고 나갈 수도 있겠다 오랜만에 가방을 들었다 하나씩 짐이 늘어 날 때 누군가 자꾸 내 이름을 불렀다 돌아보면 그림자가 어둡게 누워있을 뿐 무거.. 시로 여는 일상 2017.11.11
성선경 마음에 단풍 들다 성선경 마음에 단풍 들다 내 마음에도 가을이 왔습니다. 상강에 첫 서리를 맞은 주홍 감같이 빨갛게 물이 들었습니다. 청향은 잔에지고 낙홍은 옷에 진다는 시구처럼 단풍나무 그루터기에도 단풍이 들었습니다. 이미 잘려지고 쪼개져서 불쏘시개가 됐을 가지들조차 이제 단풍이 들었습니.. 시로 여는 일상 2017.11.10
천양희 그때가 절정이다 천양희 그때가 절정이다 하늘에 솔개가 날고 있을 때 지저귀던 새들이 숲으로 날아가 숨는다는 걸 알았을 때 경찰을 피해 잽싸게 골목으로 숨던 그때를 생각했다 맞바람에 나뭇잎이 뒤집히고 산까치가 울면 영락없이 비 온다는 걸 알았을 때 우산도 없이 바람 속에 얼굴을 묻던 그때를 생.. 시로 여는 일상 2017.11.09
라이너 마리아 릴케 무상 라이너 마리아 릴케 무상 시간의 모래바람 행복하게 축복 받은 건물마저도 끊임없이 조용히 소멸해 간다 언제나 바람에 흔들리는 삶 어느 듯 받쳐 줄 지붕도 없이 지주들만 우뚝 서 있다 그러나 몰락, 그것은 더 슬픈 것일까, 희미한 빛을 뿌리며 수면으로 되 떨어져 내리는 분수의 낙하보.. 시로 여는 일상 2017.11.07
유홍준 북천, 무당 유홍준 북천 - 무당 작두는 녹이 슬고 이파리 없는 대나무 가지는 흔들리지 않고 복사꽃 피는 북천 개울가에 폐허가 된 집이 있다 무당이 살던 집이다 쪽 찐 여자가 살던 집이다 일년에 딱 한번 그 외딴 집을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복사꽃이 물들이는데 누군가 하나는 꼭 홀려 그 외딴집으.. 시로 여는 일상/유홍준 시, 시교실 2017.11.07
함민복 호박 함민복 호박 호박 한 덩이 머리맡에 두고 바라다보면 방은 추워도 마음은 따뜻했네 최선을 다해 딴딴해진 호박 속 가득 차 있을 씨앗 가족사진 한장 찍어 본 적 없어 호박네 마을 벌소리 붕붕 후드득 빗소리 들려 품으로 호박을 꼬옥 안아 본 밤 호박은 방안 가득 넝쿨을 뻗고 코끼리 귀만.. 시로 여는 일상 2017.11.06
유홍준 북천- 피순대 유홍준 북천 - 피순대 저녁비 내리는 국도 2번, 비에 젖어 번들거리구요 우리는 길옆 식당에 앉아 피순대를 받구요 여기는 國 道가 아니라 天道라 하구요 위태롭게 위태롭게 한 손에 낫 들고 모자 쓴 사람 비 맞으며 걸어가구요 얼굴이 없구요 그는, 앞이 없구요 우리는, 북천에서는 모두 .. 시로 여는 일상/유홍준 시, 시교실 2017.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