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부화 최문자

생게사부르 2019. 10. 25. 19:08

 

부화/ 최문자


사과를 사과라고 부르면 사과가 사라진다 노트에 사과
라고 적었다 사과는 기척이 없다 사과는 죽고 우리는 사과
의 무덤을 사과라고 읽었다 사과는 사과 속에서 나와 사과
를 넘어 사과 아닌 것들에게 가 있다 죽고 싶은데로 가 버
리는 사과들 사과를 시로 썼지만 사과가 없는 채로 썼다
사라진 사과들은 이상하게 타인의 무릎 위에서 비 맞은 흙
속에서, 혹은 북유럽 관목 숲에서 쏟아지는 눈 속에서 찾
아냈다

파꽃을 그리는 화가에게 들었다 파꽃을 그리면서 수년
동안 파꽃을 무참히 죽였다고

어떤 날은 밤새 부스럭거린다
사과들이 발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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