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1052

상여꽃점/ 신미나

상여꽃점/ 신미나 한 잎, 두 잎, 꽃잎 낱장 떼며 가네 너를 잃고 백치처럼 나 는 가네 송홧가루 날리는 길 맨발로 걸어, 해 붉은 길을 걸어 이 고개 넘으면 바람이 점지한 사내 하나 만나 죄를 보태 도 좋을라나 철없이 철딱서니 없이 천하게 웃음 흘려도 너 는 다시 못 올라나 사람아, 나는 입술이 까맣게 탄다 내 살로 태(胎)를 키워 네 피나 물려둘 것을 이 세월 늙어 내 눈에 꽃물 다 바래면 네 몸내를 잊으면 한 시절 약속 없이 어기고 지는 꽃낱이 섭섭만은 않을라나 나 손금 위를 비켜간 사내였어도 이윽고 흘러갔어도

조우연 컵 씨

컵 씨/ 조우연 너무 우울한 컵 씨는 귀가 자꾸 늘어난다 아무 울적한 일이 없어도 컵 씨의 한쪽 귀는 자꾸 당겨진다 누가 차 한잔 할래요 하면서 컵 씨의 명랑을 의심하면 컵 씨는 왼쪽귀를 오른쪽으로 우회한다 못생기고 과장스 런 표정을 짓는다 그리곤 컵 씨는 고개를 숙여 안녕하세요 하고 밑바닥까지 보여준다 하지만 컵씨의 진짜 바닥은 밑 하고도 바깥쪽이라 컵 씨 반대편에 서만 컵 씨의 감정을 볼 수 있다 그릇 된 컵 씨는 그릇된 감정들을 녹차 커피 꽃차 등으로 발효시킬수 있다 누가 내 두 귀를 잡고 기울이면 애써 가라 앉힌 내부의 침전 들이 쏟아질까 몹시 불안하다 낯뜨거운 일이 생기면 컵 씨는 귀를 만지는 버릇이 있다 듣는 일은 냉정을 요하는 일이므로 귀는 늘 차갑다 귀가 무능해 지거나 기가, 귀가 막히면 ..

우유를 따르는 사람/ 김동균

우유를 따르는 사람/ 김동균 창가에 앉아 우유를 따르고 있었다. 당신은 조용히 그것을 따르고 부드러운 빛이 쏟아졌다. 둘러맨 앞치마가 하얗고 당신의 얼굴이 희고 빛이 나는 곳은 밝고 빛이 없는 곳에서도 우유를 따르고 우연한 기회에 인사를 건네고 거기에서 우유를 따르고 다음 날에도 성실하게 우유를 따르는 그런 사람에게 매일 우유를 따르는게 지겹지 않나요. 그곳은 고요하고 그곳에서 당신을 계속 지켜 보기로 하고 어떤 날은 TV를 켰는데 우유를 따르는 당신이 출연한다. 책에서도 우유를 따르는 당신이 등장한다. 당신이 앉아 있는 지면에 부드러운 빛이 쏟아지고 서가가 빛나고 읽던 것을 덮어도 빛나는 창가에서 우유를 따르던 당신이 우유를 따르고 있었다. 여기서 우유를 마시는 사람도 없잖아요. 그런데도 차분하게 우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