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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기전에 쓰는 시 글들

가기전에 쓰는 시 글들/ 허수경 귤 한 알, 창틀 위에 놓아두고 병원엘 갔지. 지난 가을에는 암 종양이 가득 찬 위를 절개했다. 그리고 겨울, 나는 귤 한 알이 먹고 싶었나 보다. 귤 한 알 인공적으로 연명하는 나에게 귤은 먹을 수 없는 것이지만 나는 그 작은 귤의 껍질을 갔다. 코로 가져갔다. 사계절이, 콧가를 스치며 지나갔다. 향기만이. 향기만이. 그게 삶이라는 듯. - 가기전에 쓰는 시 글들 2019.10. 난다 * * * 위암 수술을 하고... 얼마나 먹어 보고 싶었을까 눈 앞에 떠 올리기만 해도,' 귤'이라고 발음만 해 봐도 새콤달콤 신맛이 입안에 고일 사람은 가고 없는데, 그 생각들은 남아 시가 될지 글이 될지...위 글은 시 아닌 글이라는 얘기겠다 결국 ' 향기만 남을 삶' 이 글을 읽고 시..

김희준 오후를 펼치는 태양의 책갈피

오후를 펼치는 태양의 책갈피/ 김희준 글을 모르는 당신에게서 편지가 왔다 흙이 핥아주는 방향으로 순한 우표가 붙어 있었다 숨소리가 행간을 바꾸어도 정갈한 여백은 맑아서 읽어낼 수 없었다 문장의 쉼표마다 소나기가 쏟아졌다 태양은 완연하게 여름의 것이었다 고향으로 가는 길에선 계절을 팔았다 설탕 친 옥수수와 사슴이 남긴 산딸기 오디를 바람의 개수대로 담았다 간혹 꾸덕하게 말린 구름을 팔기도 했다 속이 덜 찬 그늘이 늙은호박 곁에 제 몸을 누이면 나만 두고 가버린 당신이 생각났다 찐 옥수수 한 봉지 손에 들었다 입안으로 고이는 단 바람이 평상에 먼저 가 앉았다 늦 여름이 혀로 눌어 붙고 해바라기와 숨바꼭질을 하던 나는 당신 등에 기대 달콤한 낮잠을 꾸었다 해바라기는 태양을 보지 않고도 키가 자란다 기다리는 마..

이명耳鳴, 나희덕

이명(耳鳴)/ 나희덕 새로운 배후가 생겼다 그들은 전화선 속에서 숨죽여 듣고 있다가 이따금 지직거린다, 부주의하게도 그는 엿들으며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어쩌면 그는 아주 선량한 얼굴을 지녔을지 모른다 절제된 표정과 어투를 지닌 공무원처럼 경험이 풍부한 외교관처럼 이삿짐센터 직원이나 택배기사처럼 무심한 얼굴로 초인종을 눌렀는지도 모른다 문 뒤에 서 있는 투명인간들 주차장 입구에서 현관문 앞에서 복도와 계단에서 우연히 마주친 듯 지나는 낯선 얼굴들 개 한 마리가 다가와 마악 내려 놓은 쓰레기봉지를 컹컹거리다가 사라진다 그러나 배후는 배후답게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어느 날 귓바퀴를 타고 들어와 잠복 중인 발소리 새로운 배후가 생긴 뒤로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귀가 운다 피 흘린다 풀벌레들이 낮밤을 가리..

다낭 호이안 바나 힐 2.

다낭 호이안 바나 힐 2. 케이블카를 환승해서 타고 올라 간 바나 힐 1600M 고지, 식민지배 시기 총독이든지 기업가든지 누린자의 별장으로 만들어졌던 곳 더운 지방에서 시원하게 보낼 수 있을 뿐더러 도시전체 모습을 조망하고 건너 해안까지 다 내려다 보이는 전망이 별천지인 곳 처음 세워졌던 별장을 중심으로 놀이 공원이 만들어져 있어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었는데 대부분은 길게 늘어서는 줄에서 차례를 기다려 반나절 구경하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그 곳에서 숙박을 하고 나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서양인, 동양인을 가리지 않고 캐리어를 끌고 나오는 사람들 노년층, 아이들이 끼인 가족단위 여행객이었다 휴가와서 장기숙박하는 사람도 있을까? 하긴 요즘은 호텔 피서도 있다잖은가 조건 좋은 곳에서 먹고자고, 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