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耳鳴)/ 나희덕
새로운 배후가 생겼다
그들은 전화선 속에서 숨죽여 듣고
있다가
이따금 지직거린다, 부주의하게도
그는 엿들으며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어쩌면 그는 아주 선량한 얼굴을
지녔을지 모른다
절제된 표정과 어투를 지닌 공무원처럼
경험이 풍부한 외교관처럼
이삿짐센터 직원이나 택배기사처럼
무심한 얼굴로 초인종을 눌렀는지도
모른다
문 뒤에 서 있는 투명인간들
주차장 입구에서 현관문 앞에서
복도와 계단에서
우연히 마주친 듯 지나는 낯선 얼굴들
개 한 마리가 다가와
마악 내려 놓은 쓰레기봉지를
컹컹거리다가 사라진다
그러나 배후는 배후답게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어느 날 귓바퀴를 타고 들어와
잠복 중인 발소리
새로운 배후가 생긴 뒤로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귀가 운다
피 흘린다
풀벌레들이 낮밤을 가리지 않고 운다
한겨울에도 운다
끈질기게 고막을 파고든다
쉬잇, 그들이 복도를 지나고 있다
< 발견> 2017 봄호
* * *
대다수 선량한, 아니 국회의원이나 정치가들이 정해 놓은 룰 안에서
그들의 충실한 ' 국민'이 되어 자기들 기득권을 유지하는데 지장이 없도록 얌전히 살아주면
특별히 경찰이나 검찰과 직접 맞닥뜨릴 일은 없다
그러나 부도덕한 자본 언론과 결탁한 그들 기득권을 지적하고 개혁하려고 떠들기 시작하는 순간
그들의 얌전한 노예이기를 거부하는 순간 알게 모르게 감찰과 감시를 받게된다
지금의 상황은 이제껏 그런식으로 권력을 쥐고 기득권을 누려온 구 세력들에 의해 현직 권력이
저항을 받고 있는 것이지만
80년 대학 졸업할 무렵
교정이 끝난 학교 교지를 들고 계엄 분소에 갔던 일이 떠오른다
이십대 젊은 여대생들의 일면 유치한 감정이 대부분인 글들을 보고 ' 검열' 도장을 찍어주면서
그들도 피식 웃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 이웃 학교 철학과 남학생이 쓴 글 하나가 걸려 빠졌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학교가 오랫동안 휴교를 했기에 졸업여행을 비롯한 학사일정이
거의 비정상적이었다
여러차례 기획회의를 해서 주제나 방향을 정했고, 청탁을 했고 원고 청탁 받은 사람들도 계엄하의
정치 사회 분위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걸 알아서 자체검열을 했을터였다
원고내용이 자세히 생각나지는 않지만 '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했으나 괜찮지 않았던 것이다
89년 ' 교육 민주화' 과정에서 교장과 교사들의 싸움이 시작되었을 때 지방경찰청 지청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
성당으로 치면 지역 분소 같은 곳이어서 연수를 끝내고 보직을 받은 신임검사나 좌천성 인사로 오는 곳일텐데
( 미투 서지현 검사 기사를 보고 알았다)
초임이 분명해 보이는 앳된 삼십대 검사를 보고 나이든 사람들조차 ' 대감님'이라며 굽신대던 일,
왜 내 나이 또래 새파랗게 젊은 사람을 나이 지긋한 기관장들이 ' 대감님, 영감님' 하며 절절 매는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한창 싸움이 진행될 때,
학교 행정실에서 나갔을 ' 이력서' 개인 신상 경력서류가 인쇄되어 시내 나돌아다녔다.
그 의도는 ' 새파랗게 젊은, 경력 몇년 안되는 것들, 별잖은 지방대 출신들(당시 경상대 출신이 다수였음)이
학교장을 상대로 싸움을 걸고 학교현장을 시끄럽게 만들며 학생들 학습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여론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평소 열심히 하던 뭘 하던 일단 싸움(?)을 시작하면 싸움을 시작한 사람들은 괴로워지기 시작한다
' 그래! 니들은 얼마나 깨끗하게 완벽하게 잘하는 지 두고보자!' 하고 표적이 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젊은 교사들이 부조리한 교육을 바로잡아 좀더 나은 교육현장을 만들기 위한 것이란 명제 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
명색이 민주공화국이지만 ' 왕국'이나 다름 없는 기득권(인사권과 교육정책, 학교재정권)에 대한 도전이며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핍박과 억압을 한다
특히 ' 정치적인 싸움'은 온 권력이 동원돼 비호해 주고 힘을 실어준다.
그 당시 우편물이 검열되고 전화가 도청되었다는 걸 알고 있다
학급마다 ' 육성회' ' 어머니회' 자녀들은 표적이 된 교사들이 수업 시간에 무슨 얘기를 했는지
부모에게 전달했고, 학교 관리자나 교육청 장학사들은 개인생활도 감시했다
교수 학습권을 침해 했고, 그 자료를 근거로 교장실에 부르고, 교육청에 불러들이고
배후에서 '학부형 연명서'를 만들어 지장을 찍어 징계를 하곤 했다
일부 선생님들 집 앞에는 정보원들이 잠복하기도 했고 , 미행을 하기도 했다
성골, 진골 귀족들의 신라는 지방호족과 6두품세력들이 중심이 되어 고려로 개편되었고
고려 후기 무신세력과 부원세력으로 대농장을 지니고 기득권이 되어 권력을 독점하면서
사회병폐를 가져 왔던 세력들은 새로운 신진세력에 의해 무너지고 조선으로 개편되었다
조선 양반 사대부 국가는 전쟁을 거치면서 드러나게되는 부조리를 제대로 개편되지 못했기에
근대기 일본 식민지로 전락하기에 이르렀고 친일, 친미 군부독재를 거치면서 누려온 기득권 정치인, 종교인,
언론, 기업, 검찰, 의사, 약사, 어용교수나 학자등등 사회구석구석에 존재하는 적폐들이
새로운 사회질서나 권력개편에 반대하며 총 공세를 펴고 있다.
바로 직전에 현직 대통령을 탄했했던 경험까지 있으니...
' 삼성공화국' 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 이명박 대통령이 풀려 나와 있다는 점이 못내 찜찜하지만...
결론적으로 역사는 앞으로 나아가지 뒤로 가지 않는다.
기성세대가 먼저 죽기 마련이고, 개인신념이나 가치관에 차이는 있지만 어쨌든 다수 젊은이들은
이전의 기성세대와 다른 경제, 교육,문화환경에서 자란다.
민주화든, 인권이든 부모세대가 쌓아서 이뤄 놓은 곳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우리세대가 향상발전 되었다고 느끼는 일도 자식들은 당연한 일이 되고 그 지점이 출발점이 되기에
다음세대들은 업그레이드든 진화든 앞 세대보다 더 나은 상황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다
고흐 정도의 삶에서 정신질환이 안 생겼다면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겠지만
한쪽 귀를 자른 사건을 두고 다양한 의견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제대로 식사를 못한 상태에서 압생트를 즐겨 마셔서 나타난 현상이라는 얘기도 있고
이명(耳鳴)이 생겨 작업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는 얘기는 의사에게서 나왔고, 자른 귀를 어느
여성에게 보냈다는 얘기도 있었던 듯... 그 진실을 누가 알겠냐만
이명현상도 일상을 매우 고통스럽게 한다고 전해 들었다
인간의 몸 어디 한 곳 중요하지 않은 곳이 없지만 , 얼굴부위에 생기는 질병도 생각보다
고통스럽다, 눈, 코. 이빨, 귀...
운동하다 갑자기 옆에서 뻥 넘어가서 당황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분은 평소 이석증이 있다고 했다
나희덕 시인은 직접 체험 했을까, 전해 듣고 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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