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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광숙 감자의 둥지

감자의 둥지/ 안광숙 땅속 깊은 곳까지 봄을 심은 건 누구일까 산책 나온 달이 갓 출산한 감자꽃에 머물다 가는 밤 하얀 스위치 같은 저 꽃잎을 켜서 줄기를 타고 내려가면 알밴 감자들이 세들어 살고 있을거야 땅속 환하게 어둠을 불 밝히며 도란도란 뿌리내린 새끼감자들이 있을 거야 둥근 알들끼리 툭, 하고 어깨를 부딪혀도 상처가 나지 않아 마데카솔이 필요 없는 땅속 마을 날카로운 아카시아 뿌리가 신경줄기를 건드려도 거참, 너털웃음 한번 웃고나면 맛나게 풀리고 마는 순박한 이들의 터, 저 깊은 땅 밑에도 흙으로 막걸리를 빚어 미소를 틔워주는 지렁이가 있고 짠눈물과 더 고소하게 퍼져가는 사랑이 자라난다 언제부터인지 내가 서 있는 땅이 꼬물거린다 땅 속의 소식을 알려 주듯 갈라진 뒷굽을 타고 전신으로 퍼져 올라오는..

조정인 폐허라는 찬란

폐허라는 찬란/ 조정인 죽음을 미리 끌어다 생필품으로 쓰는 종족이 있다. 아침이면 두런두런 죽 음을 길어 어깨에 붓거나 발등에 붓는다. 입안을 헹구고 향로에 붓는다. 쿠 키를 만들어 접시에 덜거나 우묵한 찻잔, 영원의 바닥까지 그것을 따른다. 일테면 모든 길은 죽음으로 나 있는 명백한 등을 대낮에도 밝혀두는 종족. 추상이 구체를 뒤집어 쓰는 계절. 먼 목련이 기억을 더듬어 올해의 목련 에게로 거슬러온다. 나무 안에 은어 떼 점차 맑아온다. 혹한과 가뭄,뿌리 가 받아 마신 그늘의 총량이 제련한 저렇게 서늘한 빛. 죽음을 목전에 둔 짐승처럼 꽃으로 성장한 나무가 목을 들어 길게 운다. 오후 3시, 흰 꽃그늘 아래서는 누구라도 백발이 성성한, 낯선 영역의 인 간이 된다 올해의 목련이 뎅그렁뎅그렁 조종을 흔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