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여행의 기록 126

함양 화림동 선비 길

경남 함양 화림동 선비 길 예로부터 좌 안동, 우함양이라 함양은 선비 마을답게 정자와 누각이 100여채 세워져 있다. 벗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학문을 논하거나 한양 길에 잠시 머물러 주먹밥을 먹던 곳이다. 서하면 화림동 계곡은 과거 보러 떠나는 영남 유생들이 덕유산 육십령을 넘기 전 지나야 했던 길목으로 예쁜 정자와 시원한 너럭바위가 많아 예부터 ‘팔담팔정(八潭八亭 8개의 못과 8개 정자)’으로 불렸다. 현재는 농월정터-동호정-군자정-거연정을 나무다리로 이은 6.2㎞ ‘선비문화탐방로’(2006년 말 완공)가 만들어져 이전 선비들이 지나쳤던 숲과 계곡, 정자의 자태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다리를 걷다 정자가 보이면 잠시 쉰다. 정자 앞 크고 납작한 너럭바위가 작은들판처럼 펼쳐져 있다. 바위 이름..

모처럼 창동(2)

모처럼 창동(2) 행복을 늘 멀리서 찾는 것처럼 가까운 곳을 두고 멀리 둘러 다니는 경우가 많습니다. 국화축제도 매년 다녔음에도 아직 포스팅 한 번 안한 것처럼요. 반성하면서 창동 모습 먼저 올리고 국화축제 사진도 올려 보려합니다. 영록 서점서 헌 책들과 레코드 음반을 접하고 우리의 여고시절 감성 돋게 했던 ' 독서'와 음악 얘기 창동분식에서 우동과 김밥 먹으면서 여학생 시절 떠 올리며 수다떨기 여행도 마찬가지겠지만 어느시기 누구와 하느냐에 따라 그 기분이나 감동이 달라집니다만 뭔가 새로운 도전을 위해 젊은이들과 어울려야 하는 시간도 있겠지만 역시 나이가 들면 문화 생활적으로 공감대가 있는 사람들끼리 보내는 시간이 즐겁기 마련입니다. 특별히 노력하고 꾸밀 필요 없으니 긴장없이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 ..

모처럼 창동(1)

모처럼 창동(1) 도시재생사업 이후 창동의 달라진 분위기를 한번 보고 싶었습니다. 대학 진학하면서 다른 도시로 뿔뿔히 흩어졌던 친구들이 방학이면 창동 ' 고려당' 에 모여 장소를 옮겨가며 거리를 휘젓고 다니면서 놀았습니다. 영화 보고(중앙극장, 강남극장, 연흥관도 4관까지 있었던가요?) 찻집도 가고, 분식집 '복희집'' 낙원식당'을 거치고 코아양과점 앞 횡단보도 건너 오동동으로 내려가곤 했지요. 3학년 겨울방학 즈음부터 창동이 조금씩 낯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갓 대학생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밀려나는 느낌? 그러고는 발길이 뜸해졌지만... 결혼 하고 다시 마산와서 살게되면서 부림시장에서 오성사 단추가게, 옷 수선점 지나 골목길 분식집을 자주 찾았습니다. 나이 지긋하신 부부 중 남자분이 만들어 내던 냄..

희방사 단풍

희방사 [ 喜方寺 ] 단풍 대학시절 답사 다니던 생각이 났습니다. 요즘처럼 길이 잘 닦여 있지도, 관광이 일상이던 생활도 아니어서 참으로 교통이 불편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도 역사학과니 답사 여행을 많이 다닌 편입니다만... 사실 학과마다 그런 행사가 있었습니다. 국문학과는 사투리, 방언연구를 위해, 지리학과는 지질 탐사 음악이나 미술과는 연주회나 전시회 등 학과 특징에 따라 주제는 달랐지만요. 요즘은 그렇게 할수 없지만 영주 부석사 앞 당간지주에 올라가 그 사이에서 찍었던 사진이 기억나고, 그때가 마침 가을이었는데 제가 자라던 마을에서는 감나무나 대추외에 과일이 나무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본 적이 없어서 부석사 주변 과수원에 사과가 주러주렁 매달려 있는 모습이 알마나 신기했던지... 결국 학과에서 사과..

영주 무섬 마을

영주 무섬 마을 무섬마을 유래 우리나라에는 강물이 산에 막혀 물돌이를 만들어 낸 곳이 여럿 있습니다. 안동 하회마을이나 경주 양동마을, 예천의 회룡포, 영월 선암마을, 청령포 등이 그에 해당하는데 영주 무섬 마을 역시 마찬가지로 3면이 물로 둘러쌓인 '물돌이' 마을입니다. '무섬(물섬)'은 물 위에 떠 있는 섬을 뜻하는 ‘수도리(水島里)’의 우리말 이름으로 경북영주 문수면 수도리도 물돌이 마을 중 한 곳입니다. 소백산에서 발원한 서천(西川)과 태백산에서 발원한 내성천(乃城川)이 마을 뒤편에서 만나 350° 정도로 마을을 휘돌아나가는데, 그 모습이 마치 물 위에 떠있는 섬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중국 섬계 지역의 지형과 비슷하다고 하여 ‘섬계마을’이라고도 부릅니다. 이 무섬마을에 사람이 정착해 살기..

여고동창 가을 나들이- 경북의성 고운사

여고동창 가을 나들이, 경북의성 고운사 20대 대구 있을 때 의성, 군위는 같은 경북이라도 친구나 연고가 없으면 갈 기회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 시절, 대구에는 시외버스 터미널이 네 군데 있었습니다. 대구역에서 동차(기차)를 타면 세시간 걸려 마산에 올수 있었던 시절, 일년 정도 지나 구마고속도로가 만들어져 한시간 반 정도면 마산까지 오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서부 주차장으로 해서 101번 버스 타고 다닌 기억도 납니다. 경주양산 쪽은 동부주차장, 안동영주를 가려면 북부주차장을 이용했는데 그 시절은 안동까지도 참으로 멀었습니다. 그래도 안동 도산서원이나 영주 부석사, 희방사 소수서원은 학과 단골 답사지였습니다. 자취하던 집 아주머니가 그 당시 테니스를 치러 다녔는데, 테니스 코치가 비슷한 연배였..

진주 남강, 촉석루, 의암 논개 사당

진주남강, 촉석루, 의암, 논개사당 촉석루는 남강(南江)에 접한 벼랑위에 자리잡은 정면 5칸, 측면 4칸 단층 팔작집의 웅장한 건물로 진주성의 주장대(主將臺)로 영남(嶺南) 제일의 누각이다. 조선시대부터 밀양영남루, 평양 부벽루와 더블어 우리나라에 3대"루樓"로 일컬어 진다. 고려 고종 28년에(1241년) 축성 당시 부사(府使) 김충광(金忠光)이 주도하여 창건하고, 장원루(壯元樓)라고 불렀다. 창건하여 7차례의 중건과 보수를 거쳤는데, 1365년(공민왕 14)에 창건하였다는 설도 있다. 에서 촉석루(矗石樓)로 명명되었으며, 용두사(龍頭寺)의 남쪽 돌벼랑에 위치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1593년 7월 29일 왜군의 파상적인 공격으로 진주성 동문이 무너지자 김천일, 최경회, 이종인등이 이곳에서 결사항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