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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끝물/ 안미옥

여름 끝물/ 안미옥 쓰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무중력 공간에 두 눈을 두고 온 사람처럼 무엇을 보려고 해도 마음만큼 볼 수 없어서 그렇게 두 손 두 발도 전부 두고 온 사람으로 있다고 한다면 쓰지 않는 시간을 겪고 있다고 한다면 이해가 될까 이제 다 지나갔다고 생각했는데 한 껏 울창해져서 어김없이 돌아오는 여름 불행과 고통에 대해선 웃는 얼굴로밖에 말할 수 없어서 아무말도 하지 않기로 다짐한 사람 절반쯤 남은 물통엔 새의 날개가 녹아 있었다 걸을 때마다 여름열매들이 발에 밟혔다 언제부터 열매라는 말에 이토록 촘촘한 가시가 들어 있었을까 다정한 얼굴 녹아버리는 것 밟히는 것 그 해의 맨 나중에 나는 것 우는 사람에게 더 큰 눈물을 선물하고 싶다 어떤 것이 자신의 것인지 모르게 1984 경기 안성 2012 동..

창원 의창마을 창원천 변

한 십년 쯤 전인가요? 유장근 교수님 ' 걷는 사람들' 도시 탐방이 있었던 걸로 압니다 무척 가고 싶었지만 당시 현직에 있던터라 시간이 안 맞았던지, 체력이 안 됐던지 참여를 못했습니다. 마음이 강렬했던지 ... ' 이 담 직장 그만두면 꼭 다녀 봐야지' 했는데... 그 팀들은 해체 되었고, 그 참여자들 중 일부는 더 업그레이드(?)되어 시민문화 발굴팀에 참여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 분들 이미 다 뗀 거 저는 늦었지만 하고 있습니다. 꼭 하고 싶은 일은 어째도 하게 된다는 ... 7월에 이루어진 2차 탐방은 의창마을이었습니다. 8월 탐방이 진해구 웅천이었는데...장마로 폭우로 코로나로 연기되었어요. 3회차도 시행되었으면 더 밀릴 뻔... 저도 컴텨 앞에 앉는 시간 줄이려다 보니...세월아 네월아 하네요...

바퀴를 보면 세우고 싶다/ 반칠환

바퀴를 보면 세우고 싶다/ 반칠환 해묵은 비급, 당랑권을 선 보이며 불쑥, 국도위에 내려 앉는 사마귀를 보았다 찌를 듯한 기세가 미더웁다 저건 고서에도 있는 유서 깊은 싸움이다 그러나 흥분이 고조되기 전, 가볍게 승용차가 밟고 갔다 푸른 체액이 납작한 주검보다 멀리 흐른다 이게 그들이 펼친 무공의 전부다 하지만 사마귀들은 오늘도 푸른 푸섶에서 찬 이슬로 목을 축이며 새로운 검법을 연마하리라 반드시 질주하는 바퀴를 세우고 말겠노라고 바퀴처럼 둥근 달 둥글게 떠 오르면 더 한층 다짐하리라 * * *

악수/ 김희준

악수/ 김희준 비의 근육을 잡느라 하루를 다 썼네 손아귀를 쥘수록 속 도가 빨라졌네 빗방울에 공백이 있다면 그것은 위태로운 숨 일 것이네 속도의 폭력 앞에 나는 무자비 했네 얻어 맞은 이 마가 간지러웠네 간헐적인 평화였다는 셈이지 중력을 이기 는 방식은 다양하네 그럴 땐 물구나무를 서거나 뉴턴을 유 턴으로 잘못 읽어 보기로 하네 사과나무가 내 위에서 머리를 털고 과육이 몸을 으깨는 상상을 하네 하필 딱따구리가 땅 을 두드리네 딸을 잃은 날 추령터널 입구에 수천의 새가 날 아와 내 핵을 팠던 때가 있었네 새의 부리는 붉었네 바닥에 입을 넣어 울음을 보냈네 새가 물고 가버린 날이 빗소리로 저미는 시간이네 찰나의 반대는 이단(異端)일세 아삭, 절대 적인 소리가 나는 방향에서 딸의 좌표가 연결되는 중이네 물구나..

창원 읍성

창원 읍성(邑城) 창원에도 그런 게(읍성) 있었어? 창원시 문화도시 지원센터 '시민문화공간 발굴단' 2차활동은 창원 읍성이었어요. (이미 한 달 전이지만 ㅠ) 그날 찍은 사진을 받아 본 몇몇 지인들의 첫 반응이 위와 같았습니다 바로 그 부근에 사는 사람도 있었고요. 그 반응 충분히 이해가 갔습니다 마산은 역사가 오래되고 토박이들이 여전히 많이 살고 있는 곳이지만 창원은 1980년대 이후 30여년만에 대한민국 최고의 지방도시로 자리매김하게 되었고, 현대적인 계획도시에 공단과 산업도시의 대표 도시기도 하니까요 제 학창 시절까지만 해도 창원은 마산에 비해 허허벌판(?)이었다 할지 39사 훈련소가 있다는 소문외에 별로 아는 것도 들은 것도 없었고 창원 사는 아이들이 마산으로 진학을 해 나와 학교 가까운 곳에서 ..

안개 제조공장 굴뚝에 사는 소녀를 아니?/ 정성원

안개 제조공장 굴뚝에 사는 소녀를 아니?/ 정성원 일정한 무게를 가진 안개 폐가 부풀어 하늘로 붕붕 뜬다면 누구 배 좀 눌러주실 분? 허공에서 소녀가 뿜는 안개는 단조로운 모양이야 이를테면 안개 공장장이 소녀로 가득찬 옷장을 가졌다든지 한명씩 꺼내 속을 갈라 본다든지 겉은 늙고 속은 생생한 아 이러니를 마주한다든지 옷장의 소녀가 갈라지는 건 단추야 그럼에도 심장이라 우겨볼까 상관 없고, 소녀는 달마다 죽은 태양을 낳는다 죽은 태양에 뿌리내린 안개나무, 온기를 흡수하지 못한 꽃송이, 전단지가 소리지르며 피어나 는 계절에 나무마다 물이 오른 수많은 실종이 만개하는 모습은 어떨 것 같아? 멈추지 않는 는개, 머리어깨무릎발무릎발, 멈추지 않는 노래 상실은 자주 노래를 부르게 한다 노래를 뿜어내는 굴뚝에서 포식자..

원거리 여행 다시 할 수 있을까?

여행이 사라진 일상에 적응하면서 깐꾼 옛 사진 뒤적이기 나라를 가리지 않고, 인종과 언어 가리지 않고 전세계 사람들에게 아주 공평하게 여행 떠날 기회가 제한되었네요. 거의 차단되었다고 해야 할지 한 때 하늘에 비행기가 너무 많이 다닌다는 생각을 하긴 했습니다 여행중독까지는 아니어서, 금단현상까지는 아니지만... 코로나 이전 시대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거 같아요 되돌아 갈수 없다면 받아 들이고 인정하고 변화된 현실에 적응할 수 밖에... 이전 사진들 구경하면서... 여행의 추억을 되새겨 보는 사람들 많을 거 같네요 코로나에 폭우 폭염... 인간들 살아가는 방식이 마음에 안 드는지 자연의 반격이 만만치 않습니다 저부터 반성하면서 앞으로 필요한 만큼 소비 줄이고, 자연에 순응하며 살려고 노력 하겠습니다 올해 들..

해감/고영민

해감/ 고영민 민물에 담가 놓은 모시조개처럼 눈을 감고 있었다 몇번을 소리쳐 부르자 당신은 간신히 한쪽 눈을 떠보였다 눈꺼풀 사이 짠 물빛이 돌았다. 마지막으로 당신은 나를 제 몸 속에 새겨 넣겠다는 듯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그러렁,그러렁 입가로 한 웅큼의 모래가 토해졌다 간조선干 潮線을 지나 들어가는 당신의 흐린 물빛을 따라 축축한 한 생애가 패각의 안쪽에 헐겁게 담겨져 있었다 짠물을 걸러내며 당신은 물무늬 진 사구를 온 몸으로 기고, 몸을 잊으려 한쪽 눈을 마저 닫자 날이 서서히 저물기 시작했다. 울컥 울컥, 검은 모래가 걷잡을 수 없이 토해졌다 나는 당신의 손가락을 움켜쥔 채 더 깊은 물밑까지 따라 들어 갔다. 여윈 갈빗대에서 해조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제 오지마라! 따라 오지 마라고..

김예하 거꾸로 일력

거꾸로 일력/ 김예하 벽에 걸린 새벽이 낱장입니다 하루를 들었다 놓았다 오늘을 달래주세요 푸른 시간들이 내일 한장, 마른 잎 두장...지우고 있습니다 카운트다운은 사절입니다 나의 시간들을 철봉대에 거꾸로 매달아 놓고 뒤편의 변수를 숭배하기로 했어요 내 손바닥 안에서 쥐락펴락한 것들, 캄캄할수록 더 명징한 한 줄기 빛이 아니라서 오늘이 끝점을 향해 점점 얇아집니다 빛도 호흡곤란이 있습니다 저 초록의 부스러기들 나를 비울 때까지, 내일의 운세는 인욕입니다 틈 사이로, 새벽이 나를 한장 떼거나 넘기는 방식으로 - 2018. 계간 ' 시현실' 신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