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소, 호랑이/ 김기택

생게사부르 2021. 1. 4. 08:22

 

 

소/ 김기택


소의 커다란 눈은 무언가 말하고 있는 듯 한데
나에겐 알아들을 수 있는 귀가 없다
소가 가진 말은 다 눈에 들어 있는 것 같다
말은 눈물처럼 떨어질 듯 그렁그렁 달려있는데
몸 밖으로 나오는 길은 어디에도 없다
마음이 한 움큼씩 뽑혀 나오도록 울어보지만
말은 눈 속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수천만 년 말을 가두어 두고
그저 끔뻑거리고만 있는
오, 저렇게도 순하고 동그란 감옥이여
어찌해 볼 도리가 없어서
소는 여러번 씹었던 풀줄기를 배에서 꺼내어
다시 씹어 짓이기고 삼켰다간 또 꺼내어 짓이긴다

 

 

호랑이/ 김기택

 

 

길고 느린 하품과 게으른 표정 속에 숨어 있는 눈

풀잎을 스치는 바람과 발자국을 빈틈없이 잡아내는 귀

코 앞을 지나가는 먹이를 보고도 호랑이는 움직이지 않는다

위장을 둘러 싼 잠은 무거울수록 기분좋게 출렁거린다

정글은 잠의 수면 아래 굴절되어 푸른 꿈이 되어 있다

근육과 발톱을 두부드럽게 덮고 있는 털은

줄무늬 굵은 결을 따라 들판으로 넓게 뻗어 있다

푹신한 털 위에서 뒹굴며 노는 크고 작은 먹이들

넓은 잎사귀를 흔들며 넘실거리는 밀림

그러나 멀지 않아 텅 빈 위장은 졸린 눈위에서 광채를 발산시키리라

다리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어슬렁어슬렁 걷기 시작하리라

느린 걸음은 잔잔한 털 속에 굵은 뼈의 움직임을 가린 채

한번에 모아야 할 힘의 위치를 가늠하리라

빠른 다리와 예민한 더듬이를 뻣뻣하고 둔하게 만들

힘은 오로지 한 순간만 필요하다

앙칼진 마지막 안간 힘을 순한 먹이로 만드는 일은

무거운 몸을 한 줄 가벼운 곡선으로 만드는 동작으로 족하다

굶주린 눈초리와 발빠른 먹이들의 뾰족한 귀가

바스락거리는 풀잎마다 팽팽하게 맞닿아 있는

무더운 한낮 평화롭고 조용한 정글

 

 

*     *     *

 

 

김기택 시인은 연필이나 펜 같이 가는 도구로 세밀화를 그리듯 시를 씁니다

쥐, 소 , 호랑이 같은 동물은 물론

넥타이, 사무원, 다리저는 사람 같은 작품까지... 묘사의 달인이라 불리기도 하고요.

 

오늘 위 두 시를 함께 올린 것은 시인의 시 쓰기 작법을 얘기하기 위한  의도가 아닙니다.

새해 첫날 ' 랜선 해돋이' 사진을 올린 어느 중앙지에서

해돋이를 뒤 배경으로 너무나 평화롭게 소를 끌고 정경이었는데 뒤에 달려가는 소가

이름이 알려진 유명한 ' 싸움 소' 인듯...

 

위 시에 나온 것처럼

소는 초식동물이고  눈물이 떨어질 듯 그렁그렁한 눈망울을 가진 유순한 동물로

가래와 쟁기를 끌고 논이나 밭에서 농사를 짓는 인간을 도우는 가축이라는게

정석이지 싶은데

 

호랑이처럼 싸워야 하는 생을 가진 소는 또 어떠한 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인지

 

사람도 격투기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고

스페인의 역시 어린 시절부터 투우사로 자라며 ' 영광' 스런 스타로 자리잡기도 하는 직업이지만

투우나 투계처럼 싸움을 해야하는 가축도 있다는 사실

우리도 명절이나 보름 같은 날 소싸움을 하는 곳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찾아 가보지 않아서....

 

이전에 아는 지인이 4학년 쯤 되는 아들을 데리고 가서 ' 소싸움'을 보며 휴일을 보냈다는 얘기를

듣고 좀 생소했습니다. 사람들이 보내는 시간의 결들이 서로 참으로 다르기도 하고

 

세상살이가 해를 거듭할 수록 전투적으로 변하고

농사를 짓기 위한 소보다 육류로 제공되기 위한 소가 더 필요하고

경기를 위한 소가 더 필요한 현실이면

우직함이 미덕인 소도 호랑이 같은 전투적인 용맹을 갖춰야 살아 남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다 사람의 이기심...

 

그런 상황들을 극히 견디기 어려운 사람들은 ' 단체' 를 만들어 활동가로서 사회운동을 합니다만

대다수는 저 같이 좀 불편해도 그냥 넘어갑니다.

세상 모든 일에 다 관여할 수는 없으니...

 

우직함이면 우직함, 용맹함이면 용명함 본인이 타고난  원형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는

사회라면 스트레스가 좀 덜할 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