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 김이듬
저녁이라 좋다
거리에 서서
초점을 잃어가는 사물들과
각자의 외투 속으로 응집한 채 흔들려 가는 사람들
목 없는 얼굴을 바라보는 게 좋다
너를 기다리는 게 좋다
오늘의 결심(決心)과 망신(亡身)은 다 끝내지 못
할 것이다
미완성으로 끝내는 것이다
포기를 향해 달려가는 나의 재능이 좋다
나무들은 최선을 다해 헐 벗었고
새떼가 죽을 힘을 퍼덕거리며 날아가는 반대로
봄이 아니라 겨울이라 좋다
신년이 아니고 연말, 흥청망청
처음이 아니라서 좋다
이제 곧 육신을 볼 수 없겠지
움푹 파인 눈의 애인과 창백한 내 사랑아
일어나라 내 방으로 가자
그냥 여기서 고인물을 마시겠니?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널 건드려도 괜찮지?
숨 넘어 가겠니? 영혼아,
넌 내게 뭘 줄수 있었니?
- 말 할 수 없는 애인.
2011. 문학과 지성사
* * *
크리스마스와 연말이 흥청망청하던 분위기일 때가 있었지요.
한집 건너라고 할 정도로 유달리 많은 교회 십자가
교회의 가장 큰 행사여서 화려한 조명을 매단 대형 추리가 한밤을 수 놓고
자본의 중심인 도시 가장 번화한 거리도 화려하게 치장을 하곤했지요.
송년, 망년하며 모임이 줄을 잇고
유달리 술을 곁들이는 식사와 노래방, 클럽을 찾아 흥청흥청하던...
평범한 소시민들의 살아가는 모습이기도 했지만
그 정도를 넘어서는 사람들에게는 사건, 사고가 많아지기도 하던...
올해는 코로나가 다 삼켰네요.
사람들에게 평온과 위안을 주기보다 ' 하느님의 역사'을 입으로 읊으면서
인간의 사욕을 채우기에 바빴던 교회에 대해 경고를 주고
대형화 집단화 되면서' 인간' 이 사업 수단이 되는 병원과 요양원 체육시설 같은 곳도
반성하라고 철퇴를 맞기도 하고
만나서 식사하고 차 마시며 수다를 떠는 동안 일상의 자잘한 스트레스가
날리기도 하던 소소한 즐거움도 앗아갔지만...
어쩌겠습니까?
현대사회 인간들이 살아가는 총체적인 방식을 되돌아 보라는 경고임에야
' 숨 넘어 가겠니? 영혼아,
넌 내게 뭘 줄수 있었니?'
영혼이 뭘 줄수 있을지
무용해 보이는 시가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게 무언지
'시로 여는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스탄불의 어린 사제/박노해 (0) | 2020.12.30 |
---|---|
겨울 휴관/ 김이듬 (0) | 2020.12.27 |
꽃물/김필아 (0) | 2020.12.22 |
어느 가능성/ 김필아 (0) | 2020.12.20 |
집 나온 고양이 / 한영미 (0) | 2020.1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