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꽃물/김필아

생게사부르 2020. 12. 22. 12:20

꽃물/ 김필아

 

 

누군가 소녀로 꽃물을 들였지

 

동여맨 끝이 예쁠거라며 잠이 들었어 아침에 일어나면 봉숭아들이 땅 속으로 스미는 서녘의 얼룩을 남기곤 했지

 

그날도 봉숭아는 피를 토하고 있었지

들숨날숨 긷는 소리에 톡톡 터지기도 했지

손목에 찬 초침도 없는 방수시계는 잘도 돌아갔지 기분과는 상관 없이 재깍재깍 돌아갔지

나는 겉돌았지

 

나는 시간을 빌리려 꽃 속으로 들어가는 사람 같았지

재깍거리는 소리가 몸을 삼켜버릴 것 같았지

 

시계는 점점 몸이 거대해졌지 거대한 톱니바퀴가 꿈을 야금야금 깎아 먹는 것 같았지

 

나는 힘껏 부서져라

시계를 꽃 속으로 던졌지 불량한 계집애가 톡,

 

누군가 소녀로 꽃물을 들였지

나를 쿡쿡, 찧고 있었지

 

 

 

 

 

 

'시로 여는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겨울 휴관/ 김이듬  (0) 2020.12.27
12월/ 김이듬  (0) 2020.12.25
어느 가능성/ 김필아  (0) 2020.12.20
집 나온 고양이 / 한영미  (0) 2020.12.08
박꽃/ 박은형  (0) 2020.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