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아무도 등장하지 않는 이 거울이 마음에 든다/ 남 수우

생게사부르 2021. 1. 5. 10:35

 

 

아무도 등장하지 않는 이 거울이 마음에 든다/ 남 수우

 

 

 

한 사람에게 가장 먼 곳은

자신의 뒷모습이었네

 

그는 그 먼곳을 안으러 간다고 했다

 

절뚝이며 그가 사라진 거울 속에서 내가 방을 돌보는 동안

거실의 소란이 문틈을 흔든다

 

본드로 붙여둔 유리잔 손잡이처럼

들킬까 봐

 

자꾸만 귀가 자랐다

문 밖이 가둔 이불 속에서

나는 한 쪽 다리로 풍경을 옮기는 사람을 본다

 

이 곳이 아니길

이 곳이 아닌 나머지이길

중얼거릴수록 그가 흐릿해졌다

 

이마를 기억한 손이 거울 끝까지 굴러가 있었다

 

거실의 빛이 문틈을 가를 때 그는 이 방을 겨눌 것이다

번쩍이는 총구를 지구 끝까지 늘리며

제 뒤통수를 겨냥한다 해도 누구탓은 아니지

 

거울에 남은 손자국을 따라 짚으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내게 뒷모습을 안겨주던 날 모서리가 처음 태양을 생각했다

흉터를 간직한 햇살이

따갑게 몸안을 맴돌고 있을거라고

 

뒷 모습뿐인 액자를 돌려세운다

 

거울 속에는

하얀 입김으로 떠 오른 민낯들이 너무 많았다

 

 

 

2021. 문화일보 신춘 당선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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