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성선경 마음에 단풍 들다

생게사부르 2017. 11. 10. 00:32

성선경


 

마음에 단풍 들다


내 마음에도 가을이 왔습니다. 상강에
첫 서리를 맞은 주홍 감같이 빨갛게 물이
들었습니다. 청향은 잔에지고 낙홍은
옷에 진다는 시구처럼 단풍나무
그루터기에도 단풍이 들었습니다. 이미
잘려지고 쪼개져서 불쏘시개가 됐을
가지들조차 이제 단풍이 들었습니다.
내게서 이미 떠나간 생각들 나뭇잎같이
뿔뿔이 헤어진 인연들까지 단풍이
들었습니다. 헤어지기 이전의 그 이전의
인연들로 물이 들었습니다. 나도
단풍나무 그루터기에 앉아서 빨갛게
물이 들었습니다. 이미 떨어져 나간 손목
아주 끝장내 버린 가지까지 빨갛게
웁니다

그때는 철이 없었노라고
아주 아무것도 몰랐노라고
아니, 아주 조금은 알았더래도
그때는 너무 부끄러웠었다고
그 부끄러움이
이제 이렇게 물들었다고

이미 내 마음에 가을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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