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천양희 그때가 절정이다

생게사부르 2017. 11. 9. 00:53

천양희

 

그때가 절정이다


하늘에 솔개가 날고 있을 때
지저귀던 새들이 숲으로 날아가
숨는다는 걸 알았을 때
경찰을 피해 잽싸게 골목으로 숨던
그때를 생각했다
맞바람에 나뭇잎이 뒤집히고
산까치가 울면 영락없이 비 온다는 걸
알았을 때
우산도 없이 바람 속에 얼굴을 묻던
그때를 생각했다
매미는 울음소리로 저를 알리고
지렁이도 심장이 있어 밟으면
꿈틀한다는 걸 알았을 때
슬픔에 비길만한 진실이 없다고 믿었던
그때를 생각했다
기린초는 척박한 곳에서만 살고
무명초는 씨앗으로 이름 값 한다는 걸
알았을 때
가난을 생각하며' 살다' 에 밑줄 긋던
그때를 생각했다
제 그림자를 밟지 않으려고
햇빛 마주보며 걸어 갔던 시인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아무도 돌보지 않는 고독에 바치는 것이
시라는 걸 알았을 때
시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던
그 때를 생각했다
돌아보면
그때가 절정이다

 

 

 

 


'시로 여는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은주 방  (0) 2017.11.11
성선경 마음에 단풍 들다  (0) 2017.11.10
라이너 마리아 릴케 무상  (0) 2017.11.07
함민복 호박  (0) 2017.11.06
송찬호 달빛은 무엇이든 구부려 만든다  (0) 2017.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