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
북천
- 피순대
저녁비 내리는 국도 2번, 비에 젖어 번들거리구요
우리는 길옆 식당에 앉아 피순대를 받구요 여기는 國
道가 아니라 天道라 하구요 위태롭게 위태롭게 한 손에
낫 들고 모자 쓴 사람 비 맞으며 걸어가구요 얼굴이
없구요 그는, 앞이 없구요 우리는, 북천에서는 모두 다
이방인, 피순대 한 점 소금에 찍으면 다시 한 줄금
소나기 내리구요 나팔꽃 피구요 해바라기꽃 피구요
비에 젖은 파출소 불빛 쓸쓸하구요 창자 가득 피로 만든
음식을 채우는 게 가능한가 다 태운 담배 꽁초 하나 탁
튕겨 국도 위에 버리면 휘청, 주검을 밟고 지나가지
않으려고 비틀거리는 차들, 내일 아침 저 국도위에 죽어
있는 것들은 또 누가 치우지? 까닭없이 코스모스꽃
피구요 우리는 또 다시 길옆 식당에 둘러 앉아 피순대를
받구요 쏜살같이 지나가는 차, 한 양동이 빗물 튀겨와
우리는 질끈 눈을 감구요 창자나 국도나 구불거리긴
매한가지, 피순대야 피순대야 더워 김 오르는 피순대야
옷깃 여미구요 다시 구절초 피구요 다시 구절초 피어
슬퍼지구요
* * *
날씨가 쌀랑해지니 따끈한 국물음식이 그리운 때입니다.
피순대라?
음식에 상식이 별로 없는지라 혹시 먹게 된 내력이 있나 찾아 봤습니다만...
" 김천령의 바람흔적"에서 다음 내용을 읽을수 있었습니다.
" 어릴적, 시골에서 돼지를 잡을 때 목을 칼로 찔러 피를 양동에에 받아내곤 했다. 고기의 핏기를 제거하고 신선한
선지를 얻기 위해서였다. 그 선지로 피순대를 만들었다. 돼지창자를 분비물 없이 깨끗이 씻어내고 선지와 채소등으로
소를 넣어 탑탑하면서 단맛이 나는 피와 쫄깃한 내장 맛이 유년시절의 맛과 일치되는 듯
갖은 야채와 당면이 들어 간 요즘 순대와 비교하면 투박하기 이를데 없지만 그 맛에 대한 추억은 아련하다
허름한 선술집 같은 식당에서 그야말로 옛날식 순대를 먹는 기분은 묘하다. 등뼈와 순대가 들어 간 국밥도 시골 맛이다
조금은 탑탑하지만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한 순대맛은 호불호가 명확 할 것 같다. 도시인들의 기준으로 보면 보기에도
먹기에도 마뜩 찮을수 있겠고 어린시절 시골의 추억 한자락 가지고 있는 이라면 투박하고 거칠지만 맛이 깊다는 걸
단박에 알아 챌 수도 있겠다 ."
2012년 함양읍내 시장 부근에 일년을 살았습니다.
그 근처를 드나들면서 이름난 맛집을 몇 군데 알게 되었습니다.
'조선집?' 상호는 정확하지 않지만 어탕국수, 맛으로나 영양적으로 훌륭했고 기호에 맞아 자주 먹었습니다.
'제일식당' 인가? 돼지고기를 적당하게 썰어 넣은 중국집 짬뽕도 맛이 있어 자주 애용했습니다.
원래 음식 만드는 일에 시간 많이 투자하지 않고 살아 왔고, 솜씨도 없어서 김치나 밑반찬을 사먹는데다
혼자 지내니 더 그랬지요. 적당하게 한끼 떼우면 되는 ...
브로콜리나 당근 같은 채소가 도시 마트와는 비교 할수 없이 신선해서 통으로 막장에 찍어먹어도 훌륭한 반찬이 되었고요.
메주만드는 콩으로 만든 콩자반이 얼마나 고소하던지...수입콩이 아닌 우리콩으로 만들었다는 얘기겠지요.
시장안에는 추어탕집도 있고, 횟집도 있었는데 장 다보고 돌아나오는 모퉁이 길에 유명하다는
'피순대' 집이 있었습니다. ' 병곡인지 병산식당'이었는데 호기심은 불같이 일어났지만 벌겋고 걸죽해 보이는
국물에 담겨 있는 모습이 ... 먹어보려면 용기가 필요한 음식 같아보였습니다.
개인에게 발달한 오감정도에 따라 행동선택에 영향을 받겠지요. '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 라는 상식적인 말에
극히 충실한 스타일인지 저는 시각적 효과에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습니다.
순대도 거의 설흔살 다 되어 처음 먹어봤거든요.
어떻든 하루 용기를 내어 먹으로 들어가 봤습니다. 몇 젓가락 먹었는데...그 집 ' 피순대'는 매우 훌륭했겠지만
개인적인 호기심이 충족되고 나니 다시 찾지 않게 된 메뉴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세상에 먹을 음식이 많다는 게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한 사람입니다.
구미에 맞지 않으면 다름 음식을 선택해 먹으면 되니까요.
장터 국밥집에 시골서 자취하는 여선생이 혼자 앉아 서글프게 먹어서 그랬을지...
여럿이 둘러 앉아 소주 한잔하면서 분위기에 취해 먹었으면 제 맛을 알았을지도 모르겠네요.
아니면 시에서 처럼 ' 창자 가득 피로 만든 음식을 채운다는 게 ' 은연 중 부담스러웠을지
' 천령의 바람흔적'님 말마따나 어린 시절, 피순대를 만드는 과정에 접할 기회가 없어 아련한 추억이
없어서 일지도 모르겠군요.
야채나 채소를 잘 안먹는 아이를 엄마와 함께 씨 뿌리고 물주고 키웠더니 먹게 되더라는 얘기처럼..
사는 집과 입는 옷, 먹는 음식이 타고 난 계급에 의해 결정되어 평생을 살아야 했던 시절,
산 목숨을 끊어 자기 손으로 다듬은 질 좋고 맛있는 부위는 다 상전에게 바치고 버려야 하는 부위를 손질해서
영양을 섭취했던 민중들의 애환과 그들 삶의 지혜와 연결되는 건 어줍잖게 역사를 공부한 탓일지 모릅니다.
당시 지배 계층들이 먹어 온 보기좋은 쌀밥이 보리밥이나 잡곡밥에 비해 영양적으로 좋았다는게 아니었듯이
살코기 역시 좋았다고만 할 수는 없겠지만...사실 짐승의 피나 껍질, 내장 같은 거에 비해 선택권이 있다면 온전한 부위를
우선적으로 택할 것입니다.
음식이라는 게 자기가 살고 있는 환경이 제공하는, 주변에서 섭취하기 쉬운 것이 우선적으로 선택 될 것입니다만
사회적 경제적 여건에 의해 제한을 받기도 합니다.
초창기 ' 아메리카 신드롬' 에 의해 미국에 이민을 갔던 사람들 중에 음식비를 줄이기 위해 미국인들이 취하고
버리는 뼈를 얻어와 곰국으로 단백질 칼슘 대용했다는 얘기도 들었고
다른 나라 사람들도 곰국이나 설렁탕, 선지국, 곱창 같은 ,우리 음식을 보고... 한국사람들은 버리는 부위가 없다고
배워서 해 먹게되니 나름 특별한 맛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는 일화들도 생각납니다.
어떻든 제가 먹어 본 '피순대'는 음식 자체 맛 보다는 유홍준 샘 시로 읽는 ' 피순대' 가 훨씬 더 좋네요.
시에서도 음식 자체 맛이 아니라 ' 피순대'를 먹고 있는 주변 상황에 대한 묘사가 더 많고요.
가을이 깊어 겨울로 가고 있는 이즈음,
아들과 순대국 한 그릇 먹으로 가도 좋은데...하는 일도 없이 바쁜 아들이 시간을 내어 줄려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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