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춘 선운사 점묘, 김용택 선운사 동백꽃 서정춘 선운사 점묘 동백숲이 정처定處다 아껴서 듣고 싶은 철새가 운다 울다가 그만둔다 귓속이 환해진다 동백숲 그늘을 치고 동백이 진다 할! 맞아 떨어진 점화點火를 본다 김용택 선운사 동백꽃 여자에게 버림 받고 살얼음 낀 도랑물을 맨발로 건너며 발이 아리는 시린물에 이 악물고 .. 시로 여는 일상 2018.02.14
하린 투명 하린 투명 인공눈물을 화분 속에 떨어뜨리고 싹트길 기다려 볼까요 개밥바라기별을 처음 사랑한 사람이 나였으면 하고 서쪽 하늘이 무표정을 버릴 때까지 우는 시늉을 해볼까요 혼자 밥을 먹는데 익숙해지는 허무를 위해 D-day를 표시하며 하루에 세 번 웃어볼까요 바짝 마른 그리움을 풀.. 시로 여는 일상 2018.02.12
류인서 거울 연못 류인서 거울 연못 소꿉시절 잃어버린 손거울을 꿈에서 찾았다 내 손바닥 안의 작은 연못 빛의 방죽길 못물 가라 앉아 거울은 이제 항아리에 숨겨둔 하늘처럼 깊고 고요하리라 두근두근 나를 담아주기도 하리라, 다시 찾은 거울의 못둑에 쪼그려 앉아 얼굴을 비춰보는 한순간 흙비, 유년의.. 시로 여는 일상 2018.02.10
천수호 파도의 귀를 달고 개화하는 튤립, 천수호 파도의 귀를 달고 개화하는 튤립 파도의 귓바퀴 속을 걸어들어가 봐 튤립 싹이 왜 귀부터 여는지 알게 될 거야 파도와 파도 사이 그 조용한 시간을 견디는 게 튤립의 전(全), 생(生)이거든 코끼리 코로 겨울을 견디는 오동나무 둥치나 손 바닥 펴 보이는 맨주먹의 어린 싹들도 전생.. 시로 여는 일상 2018.02.09
박서영 월도(月刀) 박서영 월도(月刀) - 대성동 23호 출토 나뭇가지 끝에 매달린 달이 발굴되었다 시간이 고스란히 붉은 녹으로 쌓인 초승달 포개진 두 입술 중에 하나를 베어낸 듯 날카로운 비명이 녹안에 감춰져 있었다 비명은 칼의 전부가 되어 유리관 밖으로 터져 나왔다 무언가를 토막 낼 듯이 저벅저벅 .. 시로 여는 일상 2018.02.07
장석남 입춘부근 입춘부근 / 장석남 끓인 밥을 창가 식탁에 퍼다 놓고 커튼을 내리고 달그락거리니 침침해진 벽 문득 다가서며 밥 먹는가, 앉아 쉬던 기러기를 쫒는다 오는 봄 꽃 밟을 일을 근심한다 발이 땅에 닿아야만 하니까 * * * 여전히 차가운 날씨, 매섭기까지 한데 동장군이 쉬 물러가지는 않겠지만 봄은 오고 있는 거겠지요. 꽃만 피면 만물이 다 살아나서 좋을 것 같은데 시인은 꽃 밟을 일을 근심하네요. 시로 여는 일상 2018.02.06
박서영 종이배를 접지 못하여 박서영 종이배를 접지 못하여 가령 이런 것이다 몇이 모여 오랜만에 종이배를 접어 보지만 한명도 제대로 접지 못할때 나는 종이배를 태운 문장들과 함께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창 밖의 목련은 아무도 접지 못한 종이배를 접어 나비를 태운다 아무도 종이배를 접지 못했으므로 나.. 시로 여는 일상 2018.02.05
박서영 시계 수리공의 장례식,무덤 박물관 가는 길 박서영 시계 수리공의 장례식 모든 죽음은 정교하게 다듬어지고 남은 사람들은 시계를 보는 습관이 생겼다 흰벽에 걸린 시계가 물고기처럼 가고 있다 저 부드러운 지느러미 한번도 만진 적 없어서 아름다운 지느러미 한번도 본 적 없어서 더 아름다운 지느러미 나는 시계속의 무량한 구.. 시로 여는 일상 2018.02.04
류인서 톡톡 류인서 톡톡 그 여자는 매니큐어 바르기를 좋아한다 올터진 스타 킹 갈라진 손톱 찢어진 나비날개 분홍빛 벌레구멍 솔기 끝 어디에든, 손가락만한 매니큐어를 만지작 거리며 그 여자는 금간 애인과의 사이를 어떻게 메울까 한동안 훌쩍거 리다 고양이처럼 달랑 의자에 올라 앉아 엄지발.. 시로 여는 일상 2018.02.02
류인서 교행交行 류인서 교행交行 조치원이나 대전역사 지나친 어디쯤 상하행 밤열차가 교행하는 순간 네 눈동자에 침전돼 있던 고요의 밑면을 훑고 가는 서느런 날개바람 같은 것 아직 태어나지 않은 어느 세계의 새벽과 네가 놓쳐버린 풍경들이 마른 그림자로 찍혀 있는 두줄의 필름 흐린 잔상들을 재.. 시로 여는 일상 2018.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