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선 목력木歷 조경선 목력木歷 자르기 전 쓰다듬으며 나무를 달랜다 생의 방향 살핀 후 누울 자리 마련한다 첫 날刀은 이파리마저 놀라지 않게 한다 나이테 한줌 슬금슬금 잘려 나가니 뱉어 낸 밥 색깔이 뼛가루처럼 선명하다 백년의 단단한 숨소리 한 순간에 무너지고 한 없이 차오르던 숨길이고 물길.. 시로 여는 일상 2018.01.31
이원 뜻밖의 지구 이원 뜻 밖의 지구 음원을 공유했다 토마토를 대량 재배했다 똑같은 것을 두 개씩 달아주기를 즐겼다 지구인 수를 셌다 비밀번호에게 집을 맡겼다 개를 껴안고 잠들었다 달걀마다 산란일자를 표시했다 어둠이 사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허용했다 사과 속에 씨앗이 들어가는 것을 허용했.. 시로 여는 일상 2018.01.26
이원 우리는 지구에서 고독하다 이원 우리는 지구에서 고독하다 7㎝하이힐 위에 발을 얹고 얼음조각에서 녹고 있는 북극곰과 함께 우리는 지구에서 고독하다 불이 붙여질 생일 초처럼 고독하다 케이크 옆에 붙어온 플라스틱 칼처럼 한 나무에 생겨난 잎들만 아는 시차처럼 고독하다 식탁유리와 컵이 부딪치는 소리 죽음.. 시로 여는 일상 2018.01.26
천지경 장화 신은 여자들 천지경 장화 신은 여자들 새벽 5시면 출근하는 종합병원 급식소 여자들은 장화를 신는다. 커다란 강철 솥이 쿵쾅대고, 노란 카레물이 용암처럼 끓어 순식간에 설거 지 그릇이 산더미처럼 쌓이는 곳, 발에 물을 적게 묻히려면 장화가 필수품인 그 곳에서 집에서 살림만 살던 여 자 한명이 .. 시로 여는 일상 2018.01.22
유홍준 빌어먹을 동백꽃 유홍준 빌어먹을 동백꽃 동백꽃 한 송이가 툭 떨어집니다 위층 사는 백수가 동 백이파리 같은 피크를 쥐고 뚱땅뚱땅 기타줄을 퉁길 때 동백꽃 한 송이가 툭 떨어집니다 막 이혼한 여자가 옷 가 지를 챙겨 덜덜덜덜 가방을 끌고 지나갈 때 동백꽃 한 송이가 툭 떨어집니다 209동 경비 아저씨.. 시로 여는 일상/유홍준 시, 시교실 2018.01.20
이원 애플 스토어 이원 애플 스토어 숲이 된 나무들은 그림자를 쪼개는 데 열중한다 새들은 부리가 낀 곳에서 제 소리를 냈다 다른 방향에서 자란 꽃들이 하나의 화병에 꽂힌다 늙은 엄마는 심장으로 기어 들어가고 의자는 허공을 단련시키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같은 자리에서 신맛과 단맛이 뒤엉킬 때까.. 시로 여는 일상 2018.01.18
이원 하루 하루 / 이원 물 밖으로 던져진 물고기처럼 말라가자 소금과 모래를 동시에 이해하자 햇빛에 타들어가자 내장을 움켜쥐자 빨리 그림자를 잃어버리자 혼자만 아는 비린내가 되자 태연한 척하자 반쪽짜리 인생을 선택하자 (새로고침) 허공을 열자 안을 칠하자 벽을 세우자 딱 맞는 작은 문을 만들자 문을 닫자 벽과 문은 서로 미쳐가자 노란색으로 뭉개자 지문으로 뒤덮자 (새로고침) 주렁주렁 익어가는 포도가 되자 검붉어지는 시늉을 알아채지 못하는 포도가 되자 (새로고침) 제초기를 돌리자 내일이 오지 못하게 언덕의 풀들을 다 깎자 땅속에 있는 것들이 무슨 힘이 있겠니 울자 울지말자 (새로고침) 양말을 갈아 신자 허공을 끄자 공기를 끄자 헛것이 되자 밤이 오면 박쥐처럼 보이게 하자 긴 구간을 걷자 (새로고침) 혹시 아침이면 이.. 시로 여는 일상 2018.01.16
정선희 6개월은 정선희 6개월은 6개월은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 6개월 동안 누군가는 다이어트를 하고 S라인을 만들고 6개월 동안 누군가는 미팅을 세 번 하고 두 번 차이고 6개월 동안 누군가는 수술을 세 번 하고 병실을 아홉 번 옮기고 6개월 동안 누군가는 화를 내다가 매달리다가 지쳐서 잠이 들고 6.. 시로 여는 일상 2018.01.14
백상웅 무릎 백상웅 무릎 저 골목은 무릎을 펴본 적이 없다 좌판 뒤에 쭈그려 앉은 헐렁한 무릎들, 제 무르팍을 깎는 줄도 모르고 감자를 깎는다 내가 다 무릎이 시려 낮잠을 설치겠다 골목과 골목을 잇는 동안 관절염을 앓았나, 허리까지 몸빼를 올려 입은 길이 비쩍 말랐다 무릎이 귀 위로 올라 가는 .. 시로 여는 일상 2018.01.11
임솔아 비극 비극 / 임솔아 감나무 밑에 떨어진 감이 보였다. 아무도 주워가지 않았다. 저 혼자 열심히 물컹물컹해졌다. 스멀스멀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나는 썩어가는 감이 거들떠보지 않는 감이었다 이가 없다며 떡은 안 먹던 할머니는 이도 없으면서 쇠고기는 꿀떡꿀떡 삼켰다. 번번이 접시위에 .. 시로 여는 일상 2018.0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