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천수호 파도의 귀를 달고 개화하는 튤립,

생게사부르 2018. 2. 9. 07:58

천수호


파도의 귀를 달고 개화하는 튤립



파도의 귓바퀴 속을 걸어들어가 봐
튤립 싹이 왜 귀부터 여는지 알게 될 거야
파도와 파도 사이
그 조용한 시간을 견디는 게
튤립의 전(全), 생(生)이거든

코끼리 코로 겨울을 견디는 오동나무 둥치나
손 바닥 펴 보이는 맨주먹의 어린 싹들도
전생을 맡긴 땅에다 귀부터 갖다대거든

왼쪽으로 세 번 오른쪽으로 두 번 또 왼쪽으로 한 번
길을 몇 번 꺾다보면
번호를 잊어 버린 녹슨 금고 앞에 선 것처럼 아득해져서
어디 먼 데를 향해 귀부터 열게 되거든

파도의 귓 바퀴를 한 바퀴 굴러나오는 윈드서퍼가
다음 파도를 기다리며 귀를 열듯이
튜립은 그 어디를 향해 귀를 열면서
죽은 새 대가리 하나를 쑤욱 낳았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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