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박서영 시계 수리공의 장례식,무덤 박물관 가는 길

생게사부르 2018. 2. 4. 00:10


박서영

 

 

시계 수리공의 장례식

 

 

모든 죽음은 정교하게 다듬어지고

남은 사람들은 시계를 보는 습관이 생겼다

 

흰벽에 걸린 시계가 물고기처럼 가고 있다

저 부드러운 지느러미

한번도 만진 적 없어서 아름다운 지느러미

한번도 본 적 없어서 더 아름다운 지느러미

나는 시계속의 무량한 구멍으로 당신을 느낀다

장례식에서도 시간의 주유소는 번창하고 있다

울음을 뒤덮고 남은 웃음으로 지폐를 세는 손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 뻔뻔함으로 시계를 본다

 

플라스틱 그릇에 담긴 국밥 한 그릇씩 앞에 놓고

심각하게 앉아 있는 시간의 덩어리들

 

당신은 두려운 이미지만 남긴 채 웃고 있구나

평생 시계속의 파닥거림에 몰두한 당신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 고단함으로

몸 안의 건전지를 갈아 끼운다

 

심장을 너무 많이 찌른 바늘이

마음의 귀신을 파 묻기 위해 구덩이를 파고 있다

 

 

 

2010. 7 .'현대시학'

 

 

무덤 박물관 가는 길

 

 

아무도 살지 않는 무덤이 점화한다

복제보다 아름다움 기억들이 펑펑 터진다

누가 태초에 봄여름가을겨울의 이름으로  저 제비꽃을

민들레를 엉겅퀴를 개망초를 세상에 꽂기 시작했을

 

무덤의 콘센트가 은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땅의 배꼽이 열린다

 

누가 소멸한 기억에 똥물을 주고 햇볕을 주고

바람을 주며 그들을 불러내는가

빈집 뚜껑을 열고 불쑥 한 덩어리 기억을 끄집어내고

봄여름가을겨울을 떠돌아 다니게 하는가

생각해 보면, 생은 모두

낯선 집게에 걸려 파닥거리다가 멈추는 것

 

내 등을 집어 올리는 묵직한 고통을 느끼며

여기저기 불룩불룩 솟구쳐 오르는 무덤 옆을 지난다

저것들은 땅의 상처, 아물지 않은 물혹들이다

저 푸르디푸른 문을 열어라

이제 내가 열고 들어가야 할 문은

저것 하나밖에 남아 있지 않으므로

 

 

*        *        *

 

 

1968년 생이니 이제 50인데 기 어려운 아홉고개가 되고 말았는지 급작스럽게 시인의 부음을 듣는

작년인가 시교실 오셨을 때 갈래머리 소녀같더니...정선희 시인 말대로 6개월이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인데

한 사람이 앓아 눕고 세상을 등질 수도 있는 시간인 것 일런지

 

'생각해 보면, 생은 모두

낯선 집게에 걸려 파닥거리다가 멈추는 것'

...

저 푸르디푸른 문을 열어라

이제 내가 열고 들어가야 할 문은

저것 하나밖에 남아 있지 않으므로'

 

시인은 가고 우리는 또 남아서 플라스틱 그릇에 담긴 국 한그릇씩 앞에 놓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 뻔뻔함으로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 고단함으로

몸 안의 건전지를 갈아 끼우고... 시계를 보고

 

 

시인의 영원한 안식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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