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영
시계 수리공의 장례식
모든 죽음은 정교하게 다듬어지고
남은 사람들은 시계를 보는 습관이 생겼다
흰벽에 걸린 시계가 물고기처럼 가고 있다
저 부드러운 지느러미
한번도 만진 적 없어서 아름다운 지느러미
한번도 본 적 없어서 더 아름다운 지느러미
나는 시계속의 무량한 구멍으로 당신을 느낀다
장례식에서도 시간의 주유소는 번창하고 있다
울음을 뒤덮고 남은 웃음으로 지폐를 세는 손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 뻔뻔함으로 시계를 본다
플라스틱 그릇에 담긴 국밥 한 그릇씩 앞에 놓고
심각하게 앉아 있는 시간의 덩어리들
당신은 두려운 이미지만 남긴 채 웃고 있구나
평생 시계속의 파닥거림에 몰두한 당신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 고단함으로
몸 안의 건전지를 갈아 끼운다
심장을 너무 많이 찌른 바늘이
마음의 귀신을 파 묻기 위해 구덩이를 파고 있다
2010. 7 .'현대시학'
무덤 박물관 가는 길
아무도 살지 않는 무덤이 점화한다
복제보다 아름다움 기억들이 펑펑 터진다
누가 태초에 봄여름가을겨울의 이름으로 저 제비꽃을
민들레를 엉겅퀴를 개망초를 세상에 꽂기 시작했을까
무덤의 콘센트가 은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땅의 배꼽이 열린다
누가 소멸한 기억에 똥물을 주고 햇볕을 주고
바람을 주며 그들을 불러내는가
빈집 뚜껑을 열고 불쑥 한 덩어리 기억을 끄집어내고
봄여름가을겨울을 떠돌아 다니게 하는가
생각해 보면, 생은 모두
낯선 집게에 걸려 파닥거리다가 멈추는 것
내 등을 집어 올리는 묵직한 고통을 느끼며
여기저기 불룩불룩 솟구쳐 오르는 무덤 옆을 지난다
저것들은 땅의 상처, 아물지 않은 물혹들이다
저 푸르디푸른 문을 열어라
이제 내가 열고 들어가야 할 문은
저것 하나밖에 남아 있지 않으므로
* * *
1968년 생이니 이제 50인데 넘기 어려운 아홉고개가 되고 말았는지 급작스럽게 시인의 부음을 듣는다
작년인가 시교실 오셨을 때 갈래머리 소녀같더니...정선희 시인 말대로 6개월이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인데
한 사람이 앓아 눕고 세상을 등질 수도 있는 시간인 것 일런지
'생각해 보면, 생은 모두
낯선 집게에 걸려 파닥거리다가 멈추는 것'
...
저 푸르디푸른 문을 열어라
이제 내가 열고 들어가야 할 문은 저것 하나밖에 남아 있지 않으므로'
시인은 가고 우리는 또 남아서 플라스틱 그릇에 담긴 국 한그릇씩 앞에 놓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 뻔뻔함으로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 고단함으로
몸 안의 건전지를 갈아 끼우고... 시계를 보고
시인의 영원한 안식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