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장만호 슬픔의 근친

생게사부르 2020. 5. 16. 09:43



슬픔의 근친/ 장만호



오늘 저녁
슬픔의 주인은 누구인가
돼지고기 한 근을 앞에 두고
부엌에 서서, 오래도록
생각하고 있는 어머니인가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아들인가

이상하다, 생각이 나질
않는구나
고추장불고기를
해먹어야 겠는데, 생각이
30년 동안 식당 주인이었는데도
갑자기 요리법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어머니의 저녁인가

제가 할게요
제가 하지요

고추장 불고기 맛있게
만드는 법
' 고추장 두 큰 술, 고춧가루
두 큰술, 후춧가루 약간...'

고기는 목살, 기름기 없는
쓸쓸한 한 근
주물러 재워두고, 담배를
피고 들어오는 아들의
저녁인가
그 사이 잠든 어머니의
시간인가

오늘 저녁 슬픔은 어떤 맛이
나는가
고추장 두 큰 술, 고춧가루
두 큰 술..

아들과 어미가 저녁을
먹는다
마흔 넷 개띠와 여든살
개띠가 저녁을 먹는다
고추장불고기
으르릉 소리도 없이
양보하며 싸 먹는다
마지막으로 남은 슬픔 한
장을 서로에게 권해주면서



*     *     *



30년 식당을 하고도

거의 일상이었을 고추장 불고기 요리를 어떻게 할지 몰라

부엌에 우두커니 서 있는 어머니


제가 하지요

제가 할게요


고추장 한 큰 술, 고춧가루, 후춧가루...


계량화 하지 않고도 어림으로 간하는 어머니의 손맛에 미치지는 못하겠지만

어머니 음식을 먹고 자란 아들인데... 못 할거 없지요.

혹 음식을 안 해 본 사람도 요즘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레시피 요리 방법을 쉽게 알수 있고

동영상도 숱하게 올라 와 있습니다


문제는 어머니 건강이지요

치매가 더 심해질 것을 우려하는


요리방법을 잊는 건 기능성 치매입니다만

치매가 심하게 진행 된 분 중에 정말 ... 머릿속이 흰 백지처럼 하얗게 비었다는 느낌을 받는

분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삶은 평생의 기억인데 아내나 남편, 심지어 자신 생의 의미이자

삶의 기록이었을 자식들마저 누군지 까맣게 기억을 못하는

하긴 자기 자신이 누군지 삶의 기억을 송두리 채 잃러버린 분들이니... 


치매는 참으로 슬픈병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인연이나 사랑하는 가족들과 정을 떼고 이 세상에서 사라지기 위한 수순일지도 모르지만요  


그래도 살아계신게 어딘가요?


좀 쓸쓸하고 서글픈 저녁밥상인데...  따스해서 다행이네요.





2017. 이성복 선생님 초청 강연, 경상대

왼쪽 세번째 분이 장만호 시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