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윤석 아지랑이 성윤석 아지랑이 아, 역부족이다 세상의 담 안을 엿보다 쫓겨가는 것들에게 탈선하고도 또 갇히는 것들에게 난 곳이 없으므로 돌아갈 곳도 없는, 뉘엿뉘엿 햇볕에 기대어 비비적거리고 희롱하는 것들에게 弓弓乙乙, 낙서도 하고 몸도 던져 버렸던 언덕을 버리고 낙서만하고 게거품 무는 .. 시로 여는 일상 2018.04.18
성윤석 회계사무소가 있는 거리 성윤석 회계 사무소가 있는 거리 1 우리는 세금을 내고 잠이 들었다. 강산성의 잠 허물이 벗겨질 것 같은 몸, 하루란, 서로 상대하고 물러서고 오래오래 적막에 무릎을 넣어 주는 일로 가득찼다. 쉬랄라 쉬랄라 지저귀는 기계음機械音 어느 곳에서도 햇살들이 휘어졌다 다시 출발했다. 세.. 시로 여는 일상 2018.04.17
정끝별 불멸의 표절 정 끝별 불멸의 표절 난 이제 바람을 표절할래 잘못 이름 붙여진 뿔새를 표절할래 심심해 건들대는 저 장다리꽃을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는 이 싱싱한 아침냄새를 표절 할래 앙다문 씨앗의 침묵을 낙엽의 기미를 알아차린 푸른 잎맥의 숨소리를 구르다 멈춘 자리부터 썩어드는 자두의 무.. 시로 여는 일상 2018.04.14
꽃이 피는 시간/ 정끝별 정끝별 꽃이 피는 시간 가던 길 멈추고 꽃핀다 잊거나 되돌아갈 수 없을 때 한 꽃 품어 꽃핀다 내내 꽃 피는 꽃차례의 작은 꽃은 빠르고 딱 한번 꽃피는 높고 큰 꽃은 느리다 헌 꽃을 댕강 떨궈 흔적 지운는 꽃은 앞이고 헌 꽃을 새 꽃인 양 매달고 있는 꽃은 뒤다 나보다 빨리 피는 꽃은 옛.. 시로 여는 일상 2018.04.13
훅, 사랑이라니 정끝별 훅, 사랑이라니 / 정끝별 딸에게 잠시 내게 맡겨진 동안 살짝 깃촉만 네가 떨어지지 않도록 손바닥을 펴 바닥이 되어 네가 날아가버리지 않도록 안으로만 굽는 손가락을 울타리 삼아 네가 숨쉴 수 있도록 세상 첫병(病)을 통과하는 동안 깃털처럼 한 슬픔을 한 허공으로 부양하며 기우뚱, .. 시로 여는 일상 2018.04.10
정끝별 삼매(三昧) 정끝별 삼매(三昧) 직박구리가 목련꽃에 머리를 쑥 박고 이 뭐꼬! 꽁지를 한껏 치켜세운 채 검은 직박구리가 흰 목련꽃잎을 용맹정진 긴 부리로 촉, 촉, 가지에 힘껏 발톱을 박고 금세 한 목련 다 지고 목련가지 끝 잎눈 하나가 하늘 한 귀퉁이를 바짝 끌어당기자 푸른 두 귀가 쫑긋, 벌어진.. 시로 여는 일상 2018.04.09
뺨 유계영 뺨 / 유계영 우리 또 만나네요 밤이 늘어뜨린 사지에서 맞딱뜨린 사람 고양이가 팽팽히 잡아당겨 놓은 골목의 양 끝에서 솟구치는 사람 사과 껍질처럼 세계의 바깥으로 뜯겨져 나가는 층층 계단으로 뺨 당신이 내민 커터칼은 내 얼굴을 오려 내겠지만 나는 그만한 입을 가지지 않겠어요 .. 시로 여는 일상 2018.04.08
사월 유계영 사월/ 유계영 축제가 놓쳐버린 풍선을 따라 소년들이 날아올랐다 아무것도 문제될 게 없다는 듯이 나를 어느 곳에 묶어야 했을까요 사육장엔 아직도 남은 해가 많은데 식고 창백한 매 맞는 개 울음 소리를 흉내 내다가 소년들은 슬퍼집니다 짖음이 많은 개들을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앞.. 시로 여는 일상 2018.04.07
방울토마토 유홍준 방울토마토/ 유홍준 붉은 시간의 丸환들이 접시 위에 가득 담겨있다 어디로든 가고 싶다 물기에 젖은 둥근 눈들이 나를 올려다본다 붉은 눈알을 수십 개 집어삼킨 저녁의 검은 혓바닥 위로 나는 질주한다 빈 접시 위에 허공을 붙잡으려고 안간힘을 쏟았던 손목들이 놓여있다 붉은 시간의 .. 시로 여는 일상/유홍준 시, 시교실 2018.04.06
이종형 바람의 집 바람의 집 / 이종형 당신은 물었다 봄이 주춤 뒷걸음치는 이 바람, 어디서 오는 거냐고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섬,4월 바람은 수의 없이 죽은 사내들과 관에 묻히지 못한 아내들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은 아이의 울음 같은 것 밟고 선 땅 아래가 죽은 자의 무덤인줄 봄맞이하러 온 당신.. 시로 여는 일상 2018.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