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괜찮아, 야옹 김혜미 안 괜찮아, 야옹/ 김혜미 괜찮지? 고양이 목에 줄을 맸다 괜찮지? 고양이를 책상 다리에 묶어 놓았다 괜찮지? 물그릇과 밥그릇 그 사이를 오고 갈 수 있으니까 괜찮지? 고양이한테 물어보지 않고 괜찮지? 정말 괜찮지? 나한테 물어 보았다 * * * 인간은 극히 이기적인 동물일지도 모른다. 자.. 시로 여는 일상 2018.04.29
이규리 특별한 일 이규리 특별한 일 도망가면서 도마뱀은 먼저 꼬리를 자르지요 아무렇지도 않게 몸이 몸을 버리지요 잘려나간 꼬리는 얼마간 움직이면서 몸통이 달아날 수 있도록 포식자의 시선을 유인한다 하네요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외롭다는 말도 아무때나 쓰면 안 되겠어요 그렇다해서 특별한 일.. 시로 여는 일상 2018.04.28
박장호 전망 좋은 창가의 식사 박장호 전망 좋은 창가의 식사 적막한 원시를 해체하고, 당신과 나는 창가에 앉아 아침을 먹습니다. 까만 겨울밤을 보낸 우리의 창 밖엔 당신의 나도, 나의 당신도 없습니다. 공존하는 우리의 부재가 당신과 나의 창을 반투명으로 만듭니다. 창밖의 사람들은 산들 바람을 맞으며 햇볕 좋은.. 시로 여는 일상 2018.04.27
임재정 이은주 임재정 이은주* 나를 볼까 눈을 찔렀다는 너에게 손목을 잘라 보냈다 잡을까 두려웠다고 단면에 썼다 붉은 소포가 검게 얼룩져 있었다 뉘신지, 저는 눈 찌른뒤 그 밖의 것들이 열려, 온데가 꽃 필것 같습니다만 밤 하늘엔 온통 검은 속 흰자위 하나 발바닥에 든 초승달 품다 떨리는 꼬리를 .. 시로 여는 일상 2018.04.26
임재정 나비 임재정 나비 1 움켰던 주먹을 펴 봄이 온다면, 낮잠에 든 장자가 나비 날개를 얻었다면, 그것은 울 안 복숭아나무에 앉았던 분홍 2 나비 겹눈으로 여미던 삼천조각의 나를 당신이 외면한다 오늘 당신은 달아나는 중이므로 내 질문은 대상을 잃는다 이후 당신은 밀물과 썰물로 되풀이되는 .. 시로 여는 일상 2018.04.25
박소란 등, 서안나 등 등 / 박소란 등이다 앓는 이의 등이다 등을 문지른다 흰 수건을 차게 적셔 열증의 등을 가만가만 문지르다 보면 뜨거운 살가죽 틈으로 문이 하나 날 것 같고 그 작다란 문이 열리기를 나는 오래 기다려 온 것만 같고 문 저편 알 수 없는 곳으로 간다면 갈 수 있다면 천장이 낮고 구들이 망그.. 시로 여는 일상 2018.04.24
할미꽃 유홍준 할미꽃/ 유홍준 안감이 꼭 저런 옷이 있었다 안감이 꼭 저렇게 붉은 옷만을 즐겨 입던 사람이 있었다 일흔일곱 살 죽산댁이었다 우리 할머니였다 돌아가신 지 삼십 년 됐다 할머니 무덤가에 앉아 바라보는 앞산마루 바라보며 생각해 보는 봄날의 안감은 얼마나 따뜻한 것이냐 봄날의, 이 무덤의 안감은 또 얼마나 깊고 어두운 것이냐 시로 여는 일상/유홍준 시, 시교실 2018.04.22
성윤석 척 척 / 성윤석 고작 수십 년 뒤에 아무 가치도 없을 것들을 위해 전철을 타고 화를 내고 울고 고작 몇 달 뒤면 아무 마음도 없을 일에 먼 곳 까지 가고 가지 않고 아니 눈 한번 질끈 감을 사이 잊혀져 버릴 나의 것들을 위해 눈물을 두고 왔다고 생각하고 나는 자를 가질 수 없다 꽃들은 피고 벌은 나는데 더 이상 내가 생각하지 않도록 멀리 더 멀리 질주하는 마음들에게 다만 나는 아무것도 잴 수 없는 자를 보낸다 나는 불안을 말하면서 사랑을 시작하는 것처럼 시로 여는 일상 2018.04.21
이성복 봄날 이성복 봄날 1 어떤 저녁은 식육식당 생철대문 앞 보도블록 사이에 하얗게 피어 있었다 나는 바람을 느끼지도 못했는데 저녁은 소스라치며 떨고 있었다 나는 또 스쳐가는 내 발걸음에 깨알 같은 그것들이 으스러지고 말 것 같아, 잠시 멈춰 섰다 아무도 찾는 이 없고 아무도 전화하지 않는.. 시로 여는 일상 2018.04.20
성윤석 4월의 끝 4월의 끝/ 성윤석 어디론가 가고 있을 때만이 구원(救援)이었다. 어깨의 먼지를 털어내면 먼지보다 더 가벼워지는 몸 그만 가, 안개가 쟁쟁 울렸다. 촉촉한 우울, 마른 밥과 딱딱한 나무들의 속이 풀어헤쳐 졌다.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의 죽은 자리에 서둘러 방을 들였다. 환한 불을 밝혔다... 시로 여는 일상 2018.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