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1052

할미꽃 유홍준

할미꽃/ 유홍준 안감이 꼭 저런 옷이 있었다 안감이 꼭 저렇게 붉은 옷만을 즐겨 입던 사람이 있었다 일흔일곱 살 죽산댁이었다 우리 할머니였다 돌아가신 지 삼십 년 됐다 할머니 무덤가에 앉아 바라보는 앞산마루 바라보며 생각해 보는 봄날의 안감은 얼마나 따뜻한 것이냐 봄날의, 이 무덤의 안감은 또 얼마나 깊고 어두운 것이냐

성윤석 척

척 / 성윤석 고작 수십 년 뒤에 아무 가치도 없을 것들을 위해 전철을 타고 화를 내고 울고 고작 몇 달 뒤면 아무 마음도 없을 일에 먼 곳 까지 가고 가지 않고 아니 눈 한번 질끈 감을 사이 잊혀져 버릴 나의 것들을 위해 눈물을 두고 왔다고 생각하고 나는 자를 가질 수 없다 꽃들은 피고 벌은 나는데 더 이상 내가 생각하지 않도록 멀리 더 멀리 질주하는 마음들에게 다만 나는 아무것도 잴 수 없는 자를 보낸다 나는 불안을 말하면서 사랑을 시작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