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박소란 등, 서안나 등

생게사부르 2018. 4. 24. 06:46

등 / 박소란

 

 

등이다
앓는 이의 등이다

등을 문지른다
흰 수건을 차게 적셔 열증의 등을 가만가만
문지르다 보면
뜨거운 살가죽 틈으로 문이 하나 날 것 같고
그 작다란 문이 열리기를
나는 오래 기다려 온 것만 같고

문 저편
알 수 없는 곳으로 간다면
갈 수 있다면
천장이 낮고 구들이 망그러진 한 칸 방에 들 텐데
늦도록 남루를 밝히는 그곳 어진 불을, 이제 그만
나는 끌 텐데

엎드려 잠이 든 건지
등은 그러나
이렇다 하 기척도 없이
두꺼운 침묵의 벽을 쌓아올리고

열은 가시지 않는다
젖은 뺨을 살며시 가져다 대면
시름없이 고개를 떨구듯 다만 노크를 하듯
똑- 똑-
누구 없나요? 타는 허공을 재차 두드리면

등이다
사랑하는 이의 등이다
등을 문지른다, 가만가만

아무도 아프지 않은 곳이다

                                                <시산맥> 2016. 봄호

 

 

 

등 / 서안나

 

 

 

등이 가려울 때가 있다

시원하게 긁고 싶지만 손이 닿지 않는 곳

그 곳은 내 몸에서 가장 반대편에 있는 곳

신은 내 몸에 내가 결코 가 닿을 수 없는 곳을 만드셨다

삶은 종종 그런 것이다 지척에 두고도 닿지 못한다

나의 처음과 끝을 한 눈으로 보지 못한다

앞 모습만 볼 수 있는 두개의 어두운 눈으로

나의 세상은 재단되었다

손바닥 하나로는 다 쓸어주지 못하는

우주처럼 넓은 내 몸 뒤편인

입도 없고 팔과 다리도 없는

눈먼 내가 살고 있다

나의 배후에는

나의 정면과 한번도 마주 보지 못하는

내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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