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장호
전망 좋은 창가의 식사
적막한 원시를 해체하고, 당신과 나는 창가에 앉아 아침을 먹습니다. 까만 겨울밤을 보낸 우리의
창 밖엔 당신의 나도, 나의 당신도 없습니다. 공존하는 우리의 부재가 당신과 나의 창을 반투명으로
만듭니다. 창밖의 사람들은 산들 바람을 맞으며 햇볕 좋은 곳으로 봄 소풍을 갑니다. 우리가 피웠던
침대 위의 흰 꽃이 떠오릅니다. 송곳니와 부리를 발라낸 한 송이 눈 꽃. 꽃의 향기는 나침반의 붉은
바늘처럼 나를 따라 옵니다. 눈에 띄면 녹아버리는 침묵의 문명, 나는 식탁의 북쪽에서 당신은 식탁
의 남쪽에서 질기고 오랜 식사를 합니다. 우리는 마치 낙오한 극지의 동물들 같습니다. 우리의 배경
에 희끗희끗 눈발이 비치고 하얀 평원이 펼쳐집니다. 나는 얼음 수염을 달고 당신은 얼음 눈썹을 달
고 멸종 직전의 북극곰처럼 남쪽에서 길 잃은 북극제비갈매기처럼 우리는 서로의 눈 속에 녹아 흐
르는 만년설을 봅니다. 물 속에서 연어들이 솟구칩니다. 붉은 연어알이 말 할 수 없는 사연으로 쏟아
집니다 날카로운 수저로 뜨는 결별의식. 이 사연을 다 삼키면 우리는 각자의 방향으로 밀봉된 편지
가 되어 무리를 찾아 나서겠지요. 창 밖의 사람들은 푸른 잔디위에서 웃음 꽃을 피우고 식사를 멈춘
우리의 식탁 위에 하얀 살갗이 차곡차곡 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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