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청진(聽診)북아현동/ 이현호

생게사부르 2019. 7. 8. 07:11

 

청진(聽診)

   -북아현동/ 이현호


 

  나는 올해로 서른 살이 되었다
  누구보다는 오래 살았고 누구보다는 일찍 죽는다
  그때부터 오늘까지 지금부터 그날까지 

 

  내 모든 날의 별자리가 떨어져내리는 밤
  당신의 이름을 부표로 띄우고, 마음의 수위를 더듬는 밤
  오래 돌보지 않은 불행에게도 정이 드는 밤
  급한 마중을 하려는 듯 긴 골목을 맨발로 뛰어나가는 바

람 속에서
  웃음소리가 높고 맑았던 소현이나 제법 점을 잘 쳤던 장
호 같은
  너무 젖어서 떠오르지 않는 얼굴들을 건지다 보면
  국제나 굴레방이란 이름의 여관방을 넘어오는 소리가 들
리는 듯 

 

  오늘은 기일, 세상의 매일은 누군가의 기일
  나의 울음을 나에게 돌려주는 날 

 

  가난한 이의 마음은 더 가난하고, 가난보다 더 가난한 마
음들
  밤늦도록 깜빡이는 술집을 비틀대며 나오는 단벌의 영혼들
  십수 년 만에 어두운 천체를 찢고 가는 떠돌이 별들
  밤의 척력에 떠밀려 서로의 등을 마주 보이며 멀어지면
  그 사이를 스치는 바람에게선 유독 낙엽의 맛이 돈다
  언젠가 악수 한 적 있는 시감의 손가락은 그새 많이 야위
었다
  생활을 무너뜨린 자리에 생활을 재개발하는 농담이 유행
하는
  북아현동, 우리는 이곳에서 여러 잠을 잤다 

 

  북쪽에 머리를 두고 자면 안 된다는데, 당신은 잠이 참 많
아서
  올해도 스물아홉 살이 되었다
  지금부터 그때까지 오늘부터 그날까지 

 

  누구나 가슴을 허물어 내압을 확인해야 하는 날이 있고
  이별의 반대쪽에도
  언 창문에 귀를 대고 숨소리를 청진하는 넋이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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