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어느 날, 우리를 울게 할/ 이규리

생게사부르 2019. 11. 8. 08:08


 

어느 날, 우리를 울게 할/ 이규리


 

노인정에 모여 앉은 할머니들
뒤에서 보면
다 내 엄마 같다
무심한 곳에서 무심하게 놀다가
무심하게 돌아갈,
어깨가 동그럼하고
낮게 내려 앉은 등이 비슷하다
같이 모이니 생각이 같고
생각이 같으니 모습도 닮는 걸까
좋은 것도 으응,
싫은 것도 으응,
힘주는 일 없으니 힘드는 일도 없다
비슷해져서 잘 굴러 가는 사이
비슷해져서 상하지 않는 사이
앉은 자리 그대로 올망졸망 무덤 같은
누우면 그대로 잠에 닿겠다
몸이 가벼워 거의 땅을 누르지도 않을,*
어느 날 문득 그 앞에서 우리를 울게 할,
어깨가 동그럼한 어머니라는,
오, 나라는 무덤


    * 브레히트의 시 ' 나의 어머니'에서

 

 

 

 

 

 

 



'시로 여는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윤수 새들이 남긴 적막이나 받아쓰고  (0) 2019.11.12
외도/ 박완호  (0) 2019.11.10
박서영 경첩에 관하여  (0) 2019.11.06
박소유 약간의 거리  (0) 2019.11.02
박소란 고맙습니다  (0) 2019.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