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1052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From July 1990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스웨덴 1931~) 1990년 7월에(From July 1990) 장례식에서, 죽은자가 내 생각들을 아무래도 나보다 잘 읽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르간은 침묵을 지키고 대신 새들이 노래했다 따가운 햇살아래 구덩이는 드러 났다. 친구의 음성은 찰나의 먼 저편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올 때 낮달이 내려다 보는 가운데 비와 정적을 뚫고 여름날이 번득이고 있었다 It was a funeral and I sensed the dead man was reading my thoughts better than I could.-- The organ kept quiet, birds song The hole out in the blazing sun My friend's voice li..

김춘수- 부재,서풍부 김동리-세월

부재(不在) /김춘수 어쩌타 바람이라도 와 흔들면 울타리는 슬픈 소리로 울었다 맨드라미,나팔 꽃, 봉숭아 같은 것 철마다 피곤 소리없이 져 버렸다 차운 한 겨울에도 외롭게 햇살은 청석(靑石) 섬돌 위에서 낮잠을 졸다 갔다 할일없이 세월은 흘러만 가고 꿈결같이 사람들은 살다 죽었다. 세월 / 김동리 세월 가는 것 아까워 아무일도 못한다, 그것은 여행을 떠나기에도, 또는 사랑을 하기에도 아깝다 책을 읽거나 말을 건네기에도 아깝다 전화를 받거나 손님을 맞기에는 더욱 아깝다 아까워 세월은 아무것에도 쓸 수 없다 흘러가는 모든 순간을 앉아서 똑 바로 지켜나 볼수 밖에 서풍부 너도 아니고 그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데, 꽃인듯 눈물인 듯 어쩌면 이야기인 듯 누가 그런 얼굴을 하고, 간다 지나간다 환..

불속의 길/김현숙

불속의 길/김현숙 살붙이였던 헌 옷가지들과 낡은 기억들에 불을 놓는다 허울의 흔적마저 떨쳐 내려는 나를 풀들이 빠안히 쳐다본다 기웃거리며, 삐죽거리며 주저 앉은 시간들이 일순 불꽃으로 황홀하다 마침내는 연기로 날고 싶다 허울도 덜 무거운 것만 날개에 싣고 떠나는 구나 재로 뒤처진 것 흙으로 스며들까 좋아하는 풀이나 나무 가까이로 가서

이성복, 남해 금산

남해 금산/이성복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속에 들어 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 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바닷물 속에 나혼자 잠기네 오늘 아침 새소리 병이란 그리워할 줄 모르는 것 사람들은 그리워서 병이나는 줄 알지 그러나 병은 참말로 어떻게 그리워할지를 모르는 것 오늘 아침 새소리 미닫이 문틈에 끼인 실밥 같고, 그대를 생각하는 내 이마는 여자들 풀섶에서 오줌 누고 떠난 자리 같다 이성복 詩集(문학과지성 시인선ㆍ275) 『아, 입이 없는 것들』중에서 좀처럼 달이 뜨지 않는 당신도 없이 나를 견디고 좀먹은 옷처럼 당신 떠난 자리를 봅니다 북이 아니라 나무통에 맞은 북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