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금산/이성복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속에 들어 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 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바닷물 속에 나혼자 잠기네
오늘 아침 새소리
병이란 그리워할 줄
모르는 것
사람들은 그리워서
병이나는 줄 알지 그러나
병은 참말로 어떻게
그리워할지를 모르는 것
오늘 아침 새소리
미닫이 문틈에 끼인 실밥 같고,
그대를 생각하는 내 이마는
여자들 풀섶에서 오줌 누고 떠난 자리 같다
이성복 詩集(문학과지성 시인선ㆍ275)
『아, 입이 없는 것들』중에서
좀처럼 달이 뜨지 않는
당신도 없이 나를 견디고
좀먹은 옷처럼
당신 떠난 자리를 봅니다
북이 아니라
나무통에 맞은 북채의 소리 같은
그런 이별이 있었지요
해는 졌는데
좀처럼 달이 뜨지 않는 그런 밝기의
이별을 당신은 바랐던가요
울지 않는 새의
부리가 녹슨 화살촉이었다는 것을
당신은 왜 일찍 일러주지 않았던가요
당신도 없이 나를 견딥니다
묵은 베개의 메밀 속처럼
나날이 늙어도 꼭 그만큼입니다
그렇게 속삭이다가
저 빗물 따라 흘러가봤으면,
빗방울에 젖은 작은 벚꽃 잎이
그렇게 속삭이다가, 시멘트 보도
블록에 엉겨 붙고 말았다 시멘트
보도블록에 연한 생채기가 났다
그렇게 작은 벚꽃 잎 때문에 시멘트
보도블록이 아플 줄 알게 되었다
저 빗물 따라 흘러가봤으면,
비 그치고 햇빛 날 때까지 작은
벚꽃 잎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고운 상처를 알게 된 보도블록에서
낮은 신음 소리 새어나올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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