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호
심심 심중에 금잔디
아버지 시신을 파먹고 자란 잔디 사이에서
아버지 시즙을 빨아먹고 자란 잡초를 뽑아낸다
그렇게 순종만을 원하던 아버지,
아버지 몸에도 잡 것이 있었군요
아버지 묻히고 나서야
내 몸에 잡기가 있다는걸 증명해주는 건가요
아버지, 차라리 잡초를 두고 잔디를 뽑아 낼까요?
아버지의 살갗에 엉겨붙는 저놈들이 잡놈이 아닐까요?
아버지 몸에 뿌리 내린
수천수만의 금잔디 금잔디가 나였잖아요?
공사장에서 떨어져
수십개의 침을 꽂고 누운 아버지 몸에서
처음 우담바라를 발견한 것도 나였고
마지막으로 떨어지던 링거액에서
아버지 시즙을 본 것도 나였어요
그러니 저 따끔한 금잔디를 심을 자격도 제게 있다고 그랬죠
아버지는 마지막 눈인사로 나를 인정하셨잖아요
아버지는 네모 난 침상에서 머리도 들지 않는 채
또 묻네요
얘야, 바늘 잘 꽂혀있니?
하관(下棺)
아버지께 업혀 왔는데
내려보니 안개였어요
아버지 왜 그렇게 쉽게 풀어지세요
벼랑을 감추시면
저는 어디로 떨어집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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