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김경주 기미(幾微)- 리안에게

생게사부르 2017. 12. 15. 12:47

김경주


기미(幾微)
   - 리안에게



  황혼에 대한 안목(眼目)은 내 눈의 무늬로 이야기하겠
다 당신이 가진 사이와 당신을 가진 사이의 무늬라고 이
야기하겠다

  죽은 나무 속에 사는 방(房)과 죽은 새 속에 사는 골목
사이에 바람의 인연이 있다 내가 당신을 만나 놓친 고요
라고 하겠다 거리를 저녁의 냄새로 물들이는 바람과 사람
을 시간의 기면으로 물들이는 서러움. 여기서 바람은 고
아(孤兒)라는 말을 쓰겠다

 

  내가 버린 자전거들과 내가 잃어버린 자전거들 사이에

우리를 태운 내부가 잘 다스려지고 있다 귀가 없는 새들

이 눈처럼 떨어지고 바다속에 내리는 흰 눈들이 물빛을

버린다 그런 날 눈을 꾹 참고 사랑을 집에 데려간 적이 있

다고 하겠다

 

  구름이 붉은 위(胃)를 산문(山門)에 걸쳐 놓는다 어떤 쓸

쓸한 자전위에 누워 지구와의 인연을 생각한다고 하겠다

눈의 음정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별의 무렵이라고 하겠다

 

  내리는 눈 속의 물소리가 어둡다 겨울엔 눈(目)안의 물

결이 더 어두워지는 무렵이어서 오늘도 당신이 서서 잠든

고요는 제 깊은 불구로 돌아가고 싶겠다 돌의 비늘들과

돌 속의 그늘이 만나서 캄캄하게 젖는 사이라고 하겠다